2018. 5. 28. 16:53ㆍ숨죽인마음
0. 모든 것은 시간 앞에 참으로 부질없다. 작게는 내 신변부터해서 세상의 흐름까지.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앞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떤 현명한 미래를 그리게 될 것인가? 아마도 가장 좋은 답은 비혼, 비출산이 아닐까?
1.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이 있었다. 내 가족보다 더 내 편이고 나를 지지해주는 세상 유일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된 이번 여행으로 인해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아니, 어쩌면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이겠지. 이 세상에 정발남, 개념남 따위는 없다. 많이 나아가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바라지조차 않았다. 이미 그것부터가 문제의 시발점이었겠지만, 이 세상에 '남페미'가 어딨냐? 그런 척 하는 음흉한 (애호박같은) 것들 뿐이지. 아무튼, 온전히 그저 나라는 '인간'의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는 지지자 하나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 리 없었다. 남자에게 여자는 그저 비싼 인형, 혹은 시녀, 또는 비서 같은, 좋게 말해서지 그냥 까놓고 말해 평생 공짜로 부려먹을 호구, 시다바리, 노예 아닌가? 이번 여행으로 그 점을 다시금 뼈져리게 깨달았다. 아무리 남들 앞에서 다정한 척, 젠틀한 척 한들. 단 둘이 있을 때는 본인 하나 챙기기 버거워 나에게 챙김을 바라고, 그러지 못하면 바로 짜증내버리는. 뭐야 나이 어디로 쳐먹었냐. 남자는 평생을 제 어미를 못 살게 벗겨먹어놓고, 나이 들어서는 젊은 여자를 제 어미 자리에 앉히려고 눈에 불을 켠 동물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 네 몸 하나 건사를 못하는데 어찌 가정을 이루고, 심지어 자식을 낳아 키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2. 계획했던 두 달 중, 남은 한 달이 아주 지옥같다. 애초에 마음을 다 비우고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직장상사와 출장을 왔다고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나는 그저 일 깔끔히 처리하고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인 처지가 되어버렸다. 비참하다. 평생 이런 놈의 비위를 맞춰주며 살 생각을 잠깐이나마 했다니 내가 돌았었다. 아니, 세상사 모든 해결해 줄 듯, 평생을 책임질 듯, 아끼고 예뻐해주는 척 했던 저 위선자가 잘못이지. 남자를 만나며, 매순간 나의 취향과 기호가 거세당함을 느꼈다. 전에는 그것을 6배려9라고 생각하며 참았지만, 아니 참으며 개념녀 코스프레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와 거울을 보니, 원래의 당차고 할말 다 하고 하고싶은대로 사는 진짜 나는 없어져 있었다. 좆팔!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가스라이팅 제대로 당한 매맞는 아내 꼴을 내가 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네? 고작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고 (그 작은 것으로 그리 하느라 고생이 많네^^) 나는 원치도 않는 50+ 선크림을 치덕치덕 발라주며 "세상에 나같은 남자친구가 어딨냐"를 시전하는 너란 새끼... 자랑거리 차고 넘쳤도다 참나.
3. 눈을 뜨자마자, 눈을 감을 때까지 헤어지는 순간을 매일 상상한다. 근래에는 3번이나 헤어지는 꿈을 꿨다. 첫번째로 마음이 무너졌던 때는 이별의 꿈을 꾸는 순간 눈물을 흘렸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번의 꿈에서 이별은 생각보다 너무나 간결해서 더 울화가 터졌다. 실제 여행 중 도저히 설움과 비참함을 참지 못하고 헤어짐을 고했었다. 당장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바보같이 날 다독이며 '아니다. 여전히 좋아하니까 이러지'란 말에 다시 눌러 앉았다. 그러나 '정 힘들면 돌아가'란 말은 여전히 묵은 채증처럼 남아있다. 그게 녀석의 진심이었겠지? 일말의 미련이 남은 내가 바보였다. 그때 다 정리해버렸어야 하는데.
4. 이 관계에 일말의 동정과 미련과 연민이 남은 건 나뿐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지난 이년 여의 시간이 참 덧없다고 느껴진다. 그동안 나는 어떤 환상에 취해 있었던 것일까. 콩깍지가 벗겨지고 자시고를 떠나, 인간이 이리도 추하게 본성을 드러내다니. 그러면서 끝까지 본인이 싫은 소리하기는 싫어하면서 싫은 행동은 다 하고. 좆팔! 다신 남자 안 만나.
5. 평생 혼자 잘 먹고 잘 살면서, 우리 부모님 봉양이나 하면서, 나 좋은 곳 가고 먹고 보고 즐기며 행복하게 비혼생활 할 것이다. 내가 왜 내 발로 지옥에 들어가려 했을까? 내가 내 손발을 묶기 전에 세상이 내 뒷통수를 쳐줘서 다행이다. 뭐, 가장 고마워해야할 사람은 직접 내 뒷통수를 후려갈긴 저 새끼겠지만.
6. 덕분의 두 달 여의 해외생활 역시 그리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지 않다. 그 점이 가장 슬프다. 내 시간,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