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에바 박혜나 / 줄리아, 까뜨린느 이지혜 / 슈테판, 페르난도 이희정 / 룽게, 이고르 김대종 / 어린 빅터 이지훈 / 어린 줄리아 신서린
세상에 뮤지컬 안 본 지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사실 올 초에 <빌리 엘리어트> 재연! 꿈에 그리던 재연!을 봤지만, 초연과 비교해 가사나 연기 디테일이 바뀐 부분도 있고, 내가 워낙 초연작으로 뮤지컬에 빠졌어서 재연은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쳤더랬다. 아무튼) 물론 그 동안 뭐 해외도 나가고 뮤지컬에 덕심도 식고 해서 별 관심이 없던 탓이긴 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류님 초연할 때도 놓쳐서 (그때도 뭐했냐 나?) 또 하면! 류님이 하면! 꼭 봐야지! 했는데 저번에 재연 올라올 때는 아마 류님이 안 해서 관심을 안 뒀던 걸로 기억한다.
오랜만에 우연히 좋은 할인의 기회가 닿아서 드디어 화제작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왔다. 근데 진짜 중블 맨 끝까지 VIP로 다 까는 심보는 뭐냐? 이 쓰레기같은 자본주의! 역시 돈이 최고다. 각설하고, 나름 오랫동안(?) 휴덕이었던 탓에 민우혁이란 배우를 모르는 상태였다. 이미 내가 예매할 시점엔 류-은은 택도 없었고요? 그나마 앞쪽 자리가 남아 있었던 민-은 캐스트로 갔다. 프레스콜 영상을 보니 성량도 빵빵하고, 무척 스탠다드한 느낌의 배우인 것 같아 안심했다.
뮤지컬을 보고 나서 느끼는 배우에 대한 감상은 그리 많이 적을 것은 없다. 정말 정석 그대로의, 파워풀한 성량의 모범적인(?) 민빅터였다. 어디 크게 흠 잡을 곳도 없고, 누구와 걸려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기본 이상은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처음 본 배우고, 그 이전의 커리어도 잘 몰라서 그런지 그 이상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내 자리는 15열 어드매였기 때문에 얼굴도 안 보여서 디테일한 연기는 볼 새도 없었다. 그저 온전한 것은 두 고막뿐...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빅터'란 캐릭터 자체가 (뒤에 계속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말하겠지만) 사실 썩 내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아니다. 이거 뭐 그냥 철부지 웅앵웅 되련님 아뇨? 지 이기심으로 주변 사람 다 죽어나가고 부들부들,,, 주인공(맞나요?ㅎ)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슬픈 전사가 이 기행들을 설명해주곤 있지만, 글쎄. 그에게 크게 동정이 가지 않는것은 내가 메(마른 인)가ㄹ... 아니 인간이라서일까?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불행한 와중에도 지 고집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해~~ 이상한 놈이라고 유학보내지는 벌(?)을 당하질 않나~~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수저가 최고,,, 씁쓸,,,^^! 류빅터였다면 조금 더 이해해 볼 여지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류님은 우아하고 이기적인 되련님이면서도, 내 안에 없던 모성애도 자극하는 미성숙하고 여린 부분까지도 디테일하게 연기를 잘 하시는 분이라 (휴덕만 있을뿐 탈덕은 없다... 류님 포에버☆) 민빅터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모든 부분을 류님이 했다면 어땠을까? 라며 상상하며 봤다. 특히 술집에서 춤추는 거랑 격투장씬ㅋㅋㅋㅋ...흑흑 극이 맘에 들든 안 들든, 이것만은 류님버전 꼭 봐야겠다. 빠져빠져 예매대기판~~~
아니, 비단 이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작품 자체가 내게는 그렇다. 분명 퀄리티 높은 대극장용 창작극이란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더 이상 나도 예전의 뮤덕이 아니기에 느낀 그대로 까보자면, 이제 이런 남의 나라 사극, 유럽 중세극에 대한 피로도가 쌓일 만큼 쌓였달까. (안정적인만큼 넘나 식상^^) 거기다가 소설 원작으로 하고 있다지만, <지킬앤하이드>의 향기가 짙게 베어 있어서 완전 새로운 극이란 느낌이 없었다. 1막 끝나고 느낀 내 감상은 'Rock 버전 <지킬앤하이드>인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그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앙리, 그리고 괴물로 바뀐 것은 아닌지. 덕분에 타이틀롤임에도 불구하고 빅터의 그림자가 극 전반에 드리워져있단 느낌은 없었다. 후반부엔 당연한 듯 괴물이 극을 지배하고, 그의 캐릭터에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괴물의 복수로 인해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면모의 빅터는 글쎄... 과연 그의 캐릭터가 극 전반을 통해 어떤 성장과 변화를 이루고 있나 모르겠다. 그저 마지막까지 자기허영과 자만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기적인 되련님이란 인상만 강하게 남을 뿐. 자신의 손으로 죽인 창조물이자 친구이자 (아마도 노린 것 같은 브로맨스 뭐시깽이의 어디 중간쯤의) 파트너였던 앙리-괴물을 끌어안고 우는 엔딩도 큰 감흥은 없었다. 과연 저 놈은 진짜 깨달은 것일까? 그냥 북극까지 와서 혼자된 게 슬프고 추워서 우는 거 아냐?
뮤지컬 넘버들도 전반적으로 배우의 역량에 크게 기대는, 클라이막스에서 다 내지르는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종국에는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어질 정도였다. 응 그래~ 너 힘들어~ 나도 힘들어~.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갈등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랬던 거 같은 기분은 그저 기분탓일까. 덕분인지 중반부에 앙리가 부르는 팝같은 노래가 오히려 좋았다. 은태배우는 뭐 예전부터 느꼈지만 한결같이 노래를 참 예쁜 목소리로 잘 하니까 부드러운 곡이 더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한창 야근에 쩔었을 때 <지크슈> 보다가 겟세마네에 경끼하며 잠을 깼던 날카로운 추억,,,ㅎ) 그나저나 은태 성대 정말 다이아몬드 성대인가 늙지를 않네! 노래를 한결같이 너무 잘 불러서 역시 박은태다, 싶었다. 은근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점점 높아지는지 꾸준히 몸을 노출하는 역할도 잘 맡는 거 같고, 좋네요. 확실히 예전보다 연기 디테일도 더 좋아진 것 같다. 광기어린 미친놈 연기는 뭐 워낙 잘 했지만ㅋㅋㅋ 이전에 지킬 처음 할 때는 워낙 베테랑 선배들이 많았어서 그런지 지킬 연기의 디테일이 부족하게 느껴졌었는데, 이번에 보니 밸런스가 적절하니 좋았다. 덕분에 민빅터가 더 매력없게 느껴졌나,,, 하지만 워낙에 앙리-괴물 캐릭터 자체가 빅터보다는 입체적인 캐릭터라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어쩌면 유일하게 입체적인 캐릭터이지 않을까. 사실 진주인공은 앙리 아닙니까? 아무튼 다음에 또 <지킬앤하이드> 하면 또 볼 의향이 생겼습니다.(의문의 영업)
사족을 더 달자면, 은앙리 프로필 사진 너무 뽀샵 심한 거 아니요 제작진 양반? 밑에 이름 안 써있으면 못 알아볼 뻔.
박혜나 배우도 워낙 노래 잘하니까 극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 그냥 뭐 이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입지가 워낙에 좁고, 한없이 평면적이어서 더 남길 코멘트도 없다. 가장 할 말이 없는 것은 '줄리아'다. 줄리아 도대체 왜 저런 사이코패스한테 청혼한거니? 어른들은 빅터를 이해를 못하지만 넌 강아지 살려낸 은인을 이해해서? 도대체 어떻게 몇십년 만에 만나서도 눈길 한 번 안 주는데도 사랑해요를 외칠 수 있는거니? 어떻게 세뇌당하고 커야 연인이나 조력자로서의 역할은 커녕, 극 내내 별 활약도 없다 죽는 결말을 맞는거야ㅜㅜ 진짜 이해 1도 안 됨. 빅터와 괴물의 치정싸움때문에 제 3의 인물로 밀려난 그녀는 죽음마저 아주 의미리스하게 표현된다. 그저 남주인공의 고통 촉발제로 그냥 죽임당함! <지킬앤하이드>를 어설프게 따라가려 했으나 이도저도 아닌 너무나 도우미에 불과한 도구로서의 여성 캐릭터들. 심지어 <지킬앤하이드>의 '엠마' 조차도 이것보다는 더 입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는데! 오히려 줄리아 캐스트의 다른 역할인 '까뜨린느'의 서사가 더 잘 보여져서, 괴물과 까뜨린느 씬이 더 슬프게 다가올 지경이었다.
엄연히 서브여주인 줄리아를 극에서 소모하고 지우는 방식조차 너무나 설명적이어서 실망했다. 이 극 전반이 캐릭터가 왜 이런 꼴을 당했나 설명하느라 시간을 많이 쏟는데, 그 설명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소설책처럼 노래로만 중얼거리는 게 아쉽다. 그나마 이 극에서 참신한 설명씬은 앙리가 장의사 죽인 누명쓰는 걸 그림자로 표현한 부분정도? 엘렌이 숙부 살해 누명을 쓰고 죽어버리는 것도 너무 한순간이어서 정말이지 앙리보다 누나가 더 불쌍하지 않냐?란 생각만 들었다. 제대로된 인간 취급도 (현시대에도 여전히) 못 받는 여자로 태어난 죈가! 언제나 신의 뜻에 대항해 고뇌하고 투쟁하는 것은 인간, 아니 그저 남자뿐이지. 2018년에도 여전히 이런 전개가 사랑받는다는 것이 더 괴롭다~~~
빅터란 창조주에 의해 재 탄생한 (근데 너도 사실 이걸 바라고 죽은 거 아니냐 앙리놈아) 괴물이 인간들에게 적개심을 갖고, 창조주에게 재도전하고 복수하는 부분도 크게 와닿진 않았다. 극의 전개내용이 너무 전형적이라 큰 거부감이 없었을 뿐이었지, 인간도 짐승도 뭣도 아닌 그저 '괴물'의 고뇌란 과연 이해될만한 것인가? 갓 탄생한 자신에게 이름 하나 붙여주지 않고, 막상 만들고보니 예상과 달라서 총질이나 하는 둥 (빅터놈이 그렇지 뭐^^)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은 자신의 창조주에게 배신감이 들어서,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싶어서! 그에게 소중한 것(여자)을 살해하는 방식을 선택한 너는 이미 완벽한 인간☆이란다! 거기다 마지막에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홀로 존재하는 고통을 준다며 자멸을 선택하는데, 그걸 보면 인간보다 윗선인듯? 유일하게 이 극에서 진화하는 것은 괴물뿐이어라. "너도 커서 어른이 되면 인간 행세를 하겠지" 유일하게 이 극에서 폐부를 찌르는 한 줄이었다. 그래, 인간이란 그렇게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이기적인 저주받은 존재야. 어? 그런 면에서는 빅터의 캐릭터가 참 일관성있게 잘 그려졌네! 잘 만들었네!(아무말)
역시나 그냥 소모된 캐릭터들 중 하나인 '슈테판'과 '룽게'. 슈테판 역의 이희정 배우는 전작들에서도 느꼈지만, 딕션이 너무... 뭐라시는 거에여 숙부님ㅜㅜ 룽게는 적당히 익살꾼이었는데, 민빅터랑 케미가 막 찰떡은 아니었다.ㅎ 민빅터 좀 받아줘라,,,
소재가 소재니만큼, 근래 개봉했던 영화 <마녀>와도 연결지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을 만들어 낸 '닥터 백'을 솜씨좋게 찾아내 박살내버리는 주인공의 활약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현재의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줬고, 세상이 이제야 눈치보기 시작하고 있다는 증거로 다가왔다. 여자 초인 캐릭터였지만, 여성성을 크게 띄고 있진 않았다. 그저 성별을 초월한 창조물, 괴물, 초인 그것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꿎게 죽인 캐릭터가 있던가?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창조주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중간중간 죽음을 맞이한 인물들은 정말 대결 중에 장애물이 되어서 불가피하게(?) 죽었다. 다들 이유없는 죽음은 없었다. 영화 <마녀>를 딱히 좋은 작품이라 생각지는 않지만 시대에 맞춰 변화하려는 과도기의 작품 중 하나로 가치는 있다고 본다.
원작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발표된 당대에 드문 여성작가의 시대를 앞서간 SF소설로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모티브를 얻어온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가치를 성취하고 있는지, 글쎄? 벌써 삼연을 맞이한 이 작품이 앞으로도 그들이 말하는 주제, '인간의 불완정성과 양면성, 그리고 홀로 고립되어서 존재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조금 더 캐릭터들이나 극의 전개를 손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잘 되고 있으니 이런 고민따위 하지 않겠지. 그러니 과연 한낱 관객1에 불과한 나는 과연 다음 공연에 또 찾을지는 모르겠다.
영생을 꿈꾸며 죽음의 고통을 빗겨간 인간을 만들어낸다고는 하지만 결국 일부 엘리트들의 통제 하에 부릴 수 있는 하위 그레이드의 인간(일까 과연? 결국 자타공인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오만은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허황된 욕심으로 포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자만이 과연 진정 존재하는지나 모를 어떤 신을 향한 것인지, 현실에 너희와 똑같이 땅에 발딛고 선, 남자와 같은 선상의 인간에서 배제하고자 발버둥치는, 진짜 너희의 창조주일지 모를 여자들을 여전히 발 밑에 두기 위한 눈속임일지 모를 일이다. 태고적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날 때조차, 결국 인간을 잉태하는 것은 오직 여자임에도, 여전히 여자를 자궁을 지닌 애낳는 존재로만 명시하고 남자의 소유물 정도로만 취급한다. <프랑켄슈타인>도 마녀사냥이 난무하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심지어 마녀로 누명을 써서 (알고보니 유충 빅터 짓^^) 어머니가 죽은 계기로 각성하고 고뇌하는 것은 역시나 남자 캐릭터밖에 없었다. 그나마 비중있던 엘렌을 비롯한 여자 캐릭터들은 여전히 마녀로 오해받아 한순간에 죽어나간다. 차라리 앙리가 괴물이 될 것이 아니라, 줄리아나 엘렌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되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을 것 같다. 전쟁통에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를, 갑자기 우린 칭구칭긔~를 외치는 앙리가 아니라. 혹은 차라리 앙리와 줄리아가 눈 맞아서 괴물이 된 앙리가 인간성을 잃고 자신을 막아서는 줄리아를 죽여버린다던지. 아무튼 이래저래 주인공부터 주변 인물들까지 캐릭터의 유기성이 많이 아쉬운 극이다. 특이 소재란 점에서 뮤지컬 <드라큘라>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거기서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다가 개죽음만 당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무대 구성이나 장치도 <프랑켄슈타인>보다는 화려하고 참신했다. <프랑켄슈타인>은 무대 활용도 너무 단편적이고 구려! <지킬앤하이드>랑 너무 유사한데 이런 고전작보다도 더 단순해서 더 구리게 느껴진다. 역시 화려함의 짜장은 <엘리자벳>인데, 여왕엘리 언제 돌아오시나요ㅠㅠ 내 인생극... 죽기 전에 여왕엘리&류토드 다시 보여줘라줘!!!ㅠㅠ (의식의 흐름대로...)
결론, 노래 짱짱하게 잘 하는 티켓파워 쎈 남자배우 둘을 톱으로 붙여서 브로맨스풍으로 대충 스토리 짜고, 락적인 넘버들로 치덕치덕 버무려서 돈이나 벌어야지~~~ 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겠다, 많이 본 사람들은 막 운다는데... 난 이 극에 적극적으로 감정이입하고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해줄만큼은 아니다. 대극장 뮤지컬들은 워낙 스토리 구멍도 많지만, 대표 넘버들이랑 배우들의 케미가 개연성~~~인 경우가 많아서 사실 크게 깔 필요도 없긴 하지만, 그냥 오랜만에 본 뮤지컬이라 더 까고 싶었다. 아 <지킬앤하이드>나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