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M. 버터플라이 2012

2012. 6. 5. 21:56마음에남아



원작  데이비드 헨리 황
연출  김광보

12/05/17, 06/03  르네 갈리마르 김영민 / 송 릴링 김다현


  인간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향했던 첫관람에서부터 멘붕의 연속이었다. 단순히 '서프라이즈'에 나올 것 같은, 흥미를 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이 아니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너머엔 인간 본연의 욕망, 마치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날개짓을 멈출 줄 모르던 한 남자의 비참한 말로만이 있을 뿐이었다.
  무대는 생각보다 작았다. 커다란 새장을 연상시키는 구조로 전체적으로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 양 끝은 각각 르네의 공간, 송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2층은 르네는 오를 수 없는 송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대 뒤편으로 조명을 이용해 마치 숲 속인 듯한 효과를 준 것도 극 전체적인 분위기에 효과적이었다. 서양사람들 사고 속의 오리엔탈리즘, 더 나아가 동양여성(나비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무대장치를 이용해 잘 표현하고 있었다. 잡힌 새마냥 주인(강자-남자-서양-제국주의)을 향한 무한한 복종과 더불어 어딘가 알 수 없는 신비로움 따위 같은.
  하지만 극은 단순히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극 제목의 M이 단순히 Madame만을 지칭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일단 시작은 아주 순조롭게,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2층에서 마치 환상처럼 나타난 아름다운 그녀, 버터플라이. 송의 등장으로 막은 오른다. 그녀를 황홀하게 바라보던 르네는 무대 끝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극중극 형식으로 르네는 자연스럽게 핑커튼으로 분해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를 설명한다. 자신과 같이 보잘 것 없는 건달에 불과한 미국인(서양남자) 핑커튼과 단 돈 100엔에 팔려와 그에게 모든 걸 바친 아름다운 일본인(동양여자) 버터플라이. 르네는 극 내내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고 핑커튼을 비꼬면서도, 본연의 욕망 '버터플라이'에 대한 환상만은 버리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남자로서 인정해주고, 조건 없는 무한한 복종을 바치는 여자.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나만의 버터플라이. 물론 이 관계는 단순한 사랑하는 연인의 관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약자를 짓밟고 올라 손 안에 들어온 권력을 휘두름으로써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맛본, 아니 맛보길 바라는 자일수록 더욱 열망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권력의 맛'. 특히나 서양-동양/남자-여자라는 뚜렷한 권력관계 속에서 가장 극과 극에 위치하는 서양남자와 동양여자. 이 얼마나 달콤한 환상, 욕망 그 자체인가.
  하지만 르네와 첫 만남에서의 송은 르네가 바라던 '버터플라이' 그 자체는 아니었다. 환상 속 그녀처럼 아름답고 연약해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도도하고 100엔보다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여자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곧 르네의 밀당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짜여진 각본대로인지, 송은 아무 힘 없는 동양여성으로서의 마지막 '수치심'을 그에게 보이며 둘의 권력관계는 명확해지는 듯 했다. 도도하기만 했던 송은 그의 뜻대로 아주 순종적으로 변했으며, 그는 그토록 바라던 남자로서의, 강자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는 듯 보였다. 자신만의 버터플라이를 통해 그는 남자임이 증명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그의 '비밀(현지처-송의 존재)'은 직장 내에선 '남자다움'으로 통했고, 이는 승진, 신분의 상승, 권력의 강화로 이어졌다. 고작 어렸을 때 본 성인잡지를 통해 처음으로 아주 달콤했던, 욕정을 넘어선 권력의 맛에 흥분했던 르네였다. 그런 그가 완벽하게 만들어진 욕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리 없었다.
  모든 욕망과 환상을 채워주는 그녀, 송을 의심하거나 아니, 절대 의심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언제까지고 자신만의 완벽한, 환상 속의 '버터플라이'로 남아있어 주길 바라고 또 바라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해버렸다. 그는 더 이상 권력 최상의 단계에 있지 않았다. 그는 남자로서 증명되기 위해 송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제발 변신만은 하지 말아줘!" 르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권력은 보이지 않게 르네에서 송으로 이동해갔다. 아니, 애초부터 그의 손에 있기나 했었을까?



  현실을 외면하는 르네 앞에 더 이상 환상 속 '버터플라이'가 아님을 선언하는 송의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서양남자들이 입는 수트를 입고 나타난 송은 분명 남자였다. 하지만 재판관에게도 말했듯 그는 온전한 남자일 수 없었다. 그는 서양=남자/동양=여자/인민=노동자라는 공식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동양의 남자이자 예술가였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 그가 그로서 존재하기 위해선,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본래 모습을 르네 앞에 드러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온전히 송 릴링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버터플라이'로서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서 오는 고통. 맹목적으로 숭배받는 자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그였지만 또한 그것은 그가 아니기도 했다. 송은 부서진 환상 앞에 무너진 르네에게 외친다. 자신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숭배해달라고. 드레스는 벗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본질은 변함없이 당신이 사랑하던 그녀라고. 하지만 끝내 송은 르네에게 존재를 거부당한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가령 여자라든가...(중략) 난 다시는 기모노를 입지 않을 겁니다. 당신, 많이 후회할걸요."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부순 환상에 대한 후회는 송, 그 자신이 가장 먼저 하고 있었다.
  홀로 남은 르네는 처음과 같이 독방에 앉아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는 마치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 속 버터플라이처럼, 하얗게 분을 칠하는 등 자신을 치장한다. 그리곤 자결. 그 모습을 2층에서 바라보던 송은 차갑고도 너무 부드럽게 "버터플라이, 버터플라이..." 하고 조용히 부를 뿐이었다. 사실 마지막 장면은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봤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첫 번째 봤을 때 르네는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아니 현실을 직시할 힘도, 용기도 남아있지 않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철저히 자신을 환상 속으로 밀어넣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무대 끝과 끝에 선 르네와 송의 겉모습 역시 처음과 아주 다른,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현실과 환상의 전복, 권력의 이동 정도로 봤었다. 하지만 두 번째 르네의 마지막은 어쩐지 버터플라이, 송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에 그가 느꼈을 존재의 고통을, 스스로를 벌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 자신 앞에 존재를 드러냈을 때, 그를 끝까지 부정했지만 결국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오페라 속 버터플라이처럼, 그 역시 기꺼이 송의 버터플라이가 되기로 한 것일까.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환상 속에 갇혀버리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랑과 이해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숭배. 사실 마지막 르네의 대사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무튼, 결국 마지막 극의 해석은 나 좋을대로가 맞는^_trrr...
  송에게 르네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이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 관람 때 모두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엔 송 역시 르네를 그만큼 사랑하진 않았어도, 마냥 이용만 했던 건 아니라고 느꼈다. 자신의 실체를 까발리는 장면에서, 송 역시 르네만큼이나 괴로워 보였다. 나를 알아봐달라고, 변함없이 사랑해달라고 외치는 그에게서 한때 그를 이용했던, 정부의 스파이였던 송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후회의 인사까지. 하지만 두 번째 관람에서의 송은 그때만큼 격렬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은 냉정하고 차가워져 있었다(이게 꽃다의 원래 노선인듯). 다만, 그래도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사람에게 전혀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는 것 역시 거짓이지 않을까. 처음부터 철저히 이용만 할 생각이었더라도, 마음 속 밑바닥엔 르네를 향한 약간의 사랑 혹은 연민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송 역시 국가에게조차 버림받고 그 누구에게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으니까. 프랑스에서 르네와 함께 지내는 동안만큼은 두 발 뻗고 편히 지낼 수 있었다고 말했으니까. 그때만큼은 르네와 행복했고, 그를 사랑했었다고 믿고 싶다.

  소위 꽃다송으로 불리는 김다현 배우님은 무대에서는 처음 봤는데, 아... 어머니... 저 사람이 4살 난 아들내미 아버지란 것이 말이 됩니까? 녜? 예, 정답입니다^_^)/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답고, 거짓말처럼 멋있어지는 너란 남자 고소ㅠ,ㅠ!!! 2분여의 변신시간 동안 육성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처음 봤을 때는 장막이 걷히고, 머리에 스프레이스 슉슉 뿌리는 모습까지ㅠㅠ 으앙ㅠㅠ 진정 남자다잉! 수컷의 향기! 거기다 몸은 왜 또 그리 쓸데없이 좋은가!?! 대립씬에서 완전 거칠게 르네를 막 다루는 모습에서 하앍하앍*-_-*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특히나 소파에 드러누울 때 그 옆선이란... 으하아아아아ㅏ항하아아ㅏ아아ㅏ...ㅠㅠ 이렇게 리뷰는 산으로^^! 두 번째, 꽃다송 막공에서는 그때와 같은 박력은 없었지만(후기를 찾아보니, 유독 17일이 박ㅋ력ㅋ이 터졌었다며), 충분히 눈물날 만큼 아름답고, 아름다웠으며, 아름다우셨다...ㅠㅠ...아아...졌다...! 나란 얼빠...! 거기다 극이 끝나면 완전히 180도 다른 표정!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초롱초롱 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으악!!! 역시 사람은 잘 생긴게 최고^_^b
  꽃다에 지지 않을 만큼 멋있는 (살짝 슈/주의 ㄷㅎ느낌이 나는) 김영민 배우님! 거기다 그렇게 잘 생겼는데 한 없이 찌질해!!! 제가 또 찌질한 남캐에 환장하는 거 어떻게 아시고 데헷^_< 극중극 형식으로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극에서 엄청난 감정 기복을 아무 무리없이 소화하시던 배우님! 영화에도 많이 출연하셨던데 왜 몰랐지! 왜 몰랐을까! 아무튼 무대에서도 자주 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관람에서는 아무래도 원캐스트로 연장공연까지 가서 목상태가 안 좋아졌는지, 딕션이 좀 많이 안 좋았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표정과 동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극을 채울 수 있을만큼, 그는 완벽한 르네 그 자체였다.
  송과 르네의 체격차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시각적으로도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버터플라이'였을 때는 미모가 너무나 출중하여(*-u-*) 별 위화감이 없지만, 남자인 송으로 등장했을 때의 그 체격차이란! 체감할 수 있는 그 차이와 거기서 오는 위화감은 엄청났다. 거기다 단번에 르네를 제압할 때 송의 카리스마 역시 굉장했다. 이래저래 최적의, 환상의 캐스팅인듯!
  송과 르네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 역시 짧지만 강렬하게, 자신이 각자 추구하는 욕망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었다. 커다란 새장 속에서 모든 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히 자신의 욕망을 향해 날개짓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 본연의 모습을 적당한 유머를 섞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아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여전히, 끊임없이 내 손안에 권력이 들어오기만을 바라며 발버둥치고 있지 않는가.
  재공연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했으면 하는 좋은 극이었다. 아니면 원작이 아닌, 김광보 연출 버전 희곡집이라도! 제발!


  모르고 갔는데, 17일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가 있었다. 당연히 사인은 못 받았지만(^_ㅠ) 대신 사진이라도 여한이 없도록 맘껏 찍었다ㅋ. 존잘이란 말은 바로 여기다 쓰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