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에 이어 류님의 맨얼굴 한번 보기 참 어려운 올해...(쑻) 특히나 처음 발표된 캐릭터 컷을 보고 아니 왤케 갈수록 야위셔;_;란 걱정을 먼저 하게한 10주년을 맞이한 <맨오브라만차>를 보고 왔다. 심지어 10주년인데 샤롯데도 아니고 디큐브라니...!란 조금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으로 향했다.(그러나 디큐브가 우리집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가까워서 막차 걱정따위 없다는 게 함정...인데 전 수욜 마티네로 보고 왔고요? 극장 나와서도 훤한 대낮이었고요?)
사실 이 극은 대학때(자그마치 2009년) 나보다 먼저 뮤덕이 되었던 친구가 인생극이라고 꼽아서 기대를 참 많이 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가 처음 이 극을 보게된 건 2012년이었고, 그때는 인생 내 최고의 고난기... 아니다, 고난기에 막 접어드는 (이때는 더 큰 불행과 시련이 다가올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 초입이었다. 이 당시에는 어떤 작품을 보든 항상 영혼이 없는 상태에서 봐서 크게 감동적으로 와닿진 않았었더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난가듯 3동키를 클리어했네...ㅋ 소울리스한 나를 미세하게나마 두드리는 극임에는 분명했나보다.) 그 유명한 '임파서블 드림'도 분명 좋았지만 마음에 남아 있진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둘시네아'였는데, 그마저도 홍동키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팬텀>에서도 한창 주절댔듯, 요즘 류님 애정도가 거의 매번 폭발지경이기 때문에 아묻따 예매! 더불어 지금은 지난 2012년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인간다운 삶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무려)월차 쓰고 마티네로 보고 왔다.(물론 이것만을 위해서 월차를 낸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눈치 안 보고 월차를 쓸 수 있는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그야말로 2012년도의 나에게 임파서블 드림이었다.)
아아 류님, 류동키. 2012년에 느꼈던 자신감 넘치는 호스트라기보다는, 그저 한낱 시인이자 극작가이자 배우에 불과한, 그러나 이상 없이 살 수 없는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곧장 태양을 집어 삼킬 듯한 두 눈을 가진, 아주 귀여운 할아버지 돈키호테로 변했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건강에도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 컨디션 최상으로 봤기 때문에 전혀 졸지도 않았다.(그러나 이번엔 제 옆에 계신 분이 조셨고요?) 그저 극중 도지사처럼 홀린듯 류동키의 모험을 따라갔다. 그나저나 류동키 (알고는 있었지만) 왤케 귀엽고 스윗하죠? 슬랩스틱 하실 때마다 씹덕;_; 솔까 알돈자한테 둘시네아라고, 마이 레이디라고 추근대는거(ㅋㅋㅋㅋㅋㅋㅋ)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왠 노망난 늙은이야....소ㅗ름ㅗ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류동키의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 마음 하나 하나를 가만히 듣고 보고 있다보면 정말 나(알돈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나 겉모습이나 정신상태를 다 떠나서,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말이다. 그 모습에 알돈자를 보고 있던 나까지도 마음이 따뜻해졌고, 나 역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류님;_; 저 크롬허트☆에서 다시 인간 심장으로 돌아오고 있나봐요;_;)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임파서블 드림'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꿈... 이룰 순 없어도!" 덕분에 <맨오브라만차>가 말하고자 하는 바, 돈키호테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1막이 끝나고 멍하니 앉아있다보니, 어렴풋이 대학시절 친구가 말했던 <맨오브라만차>의 감동의 깊이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전미도 배우는 사실 나쁘진 않은데 굳이 고르고 싶진 않은 배우였다. 일단 노래를 잘 하는 뮤배가 아니고, 그녀의 연기 스타일도 너무 연극적인데다(옛날 옛적에 싸운 '미도라라'가 내 마지막 기억...) 외모도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취향해주세요 존중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인 린아는...(한숨) 노래는 잘 하는데 연기가 정말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기 때문에(잘가요 루시...) 알돈자는 노래보다 연기가 중요한 캐릭터란 생각이 들어 미도돈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낫베드나 쏘쏘 정도가 아니었다.
첫 등장에는 너무 건달처럼 나와 대사를 나무토막처럼 뱉어내서 당황했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가 없었던 덕분인지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초반에는 좋게 봐도, 극 중 표현을 빌리자면 (쓰기 싫지만) 아무나 따먹기 쉬운 여자라기보다는 그저 어린 부엌데기, 심지어 소년미까지 느껴지는 알돈자여서 류동키와의 케미가 팡팡 터지진 않았다. 오히려 산초와 투닥거릴 때 더 케미가 터지더라는;;ㅋㅋㅋㅋ
그런 그녀가 류동키의 말에 점점 반응하면서 소년에서 소녀로 변했다. 그녀의 인생 처음으로 '꿈'이란 것을 갖게 된 모습, 그 감동이 얼마나 큰지 보는 이들이 한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윽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힘들어하는 그 씬 이후로는 미도돈자에게 마음을 다 주고 말았다. 특히 여태껏 내가 본 (이래봤자 세 명뿐이지만) 알돈자 중에 피지컬이 제일 작아서인지 정말 보는 내내 괴로웠다. 이 장면의 중요성을 알지만, 알면서도 이 장면을 꼭 넣어야만 했는지, 이토록 사실적으로 연기해야만 하는건지...ㅠㅠ 이후에 여전히 끔찍하고 한층 더 절망적으로 변해버린 현실의 고통에 몸부림 치는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 포인트를 위해 초반에 저렇게 나무토막처럼 연기하셨낰ㅋㅋ 싶을 정도로ㅠㅠ(칭찬입니다요)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알돈자'는 단순한 노래라기보다 정말이지 감정의 폭발이자, 이 극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녀가 류동키를 향해 쏘아대는 말들에 상처를 받은 건 분명 보고 있던 류동키만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을 향한 화살은, 그녀가 처음으로 가져본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그 고통은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졌다. 이때부터 나도 모르게 울기 시작했다. 여태껏 뮤지컬을 보고 운 적은 <빌리 엘리어트> 외엔 없었다. 더군다나 첫 회사를 퇴사한 이후 정말 영혼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무엇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미도돈자의 외침에 거짓말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리고 잠시 진정했다가 '둘시네아 리프라이즈'부터 또 다시 터진 눈물은 커튼콜이 끝난 후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어깨까지 들썩일 정도로,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극장을 나서며 돌이켜보니 이번 극이 나를 더 울렸던 건, 내가 지금 처한 상황 때문인 듯 싶다. 처음 봤던 2012년의 여름은 내가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였다. 내가 어릴 때부터 마음 속에 품었던 꿈에 한발짝 다가선 시기이기도 했다. 육체적으로는 너무나 힘들었지만 그 분야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꿈을 이룬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정신적인 만족감이 더 클 때였던 것이다.(덕분에 영혼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 '이룰 수 없는 꿈'을 막연하게 외치던 낭만주의자 돈키호테의 외침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기 떄문에. 그러나 만 3년이 지난 지금. 난 내 삶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었던 꿈 때문에 그야말로 산산히 부셔졌다. 망가진 인형처럼, 유행지나 버려진 장난감처럼 누군가에게는 실패자, 낙오자란 타이틀을 얻었다. 솔직히 지금 삶의 수준이 2년 전보다 훨씬 안락하고 낫지만, 인간 '나' 인생사의 챕터를 매긴다면, 지금은 방황기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꿨던 꿈은 달콤했던 만큼 너무나 잔인(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하게 날 괴롭혔고, 그로인해 지금은 꿈을 잃은, 꿈 자체가 없는 텅 빈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런 지금에 만난 미도돈자가 나와 겹쳐 보였다면 비약인 걸까. 그런 그녀를 위로하던 류동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외치던 알론조 키하나에게 너무나 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알돈자가, 아니 둘시네아가 슬퍼하는 산초에게 "믿어요, 산초"라고 다그친 덕분에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내 메마른 삶에도 언젠가 다시 꿈이 깃드리라는 믿음.
정상훈 배우는 무대에서 본 적은 없어서인지, 평소 뮤배라기보다 예능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호이산초는... 제가 아는 산초와 너무 달라 감당 못할 것 같아서(쑻) 상훈산초로. 역시나 감초 역할답게 그냥 대사도 마치 애드리브처럼 들리게 하는 그의 능청스런 연기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산초는 훈진산초가 더 내 취향인듯. 씹덕씹덕하쟈나요;_;(왜 이번엔 안 하죠 훈진산초;_;) 이런 말하면 좀 뭣하지만 훈진산초가 정말 돈키호테의 사랑스러운 길동무 하인 역할을 충실히 했다면, 상훈산초는, 아니 정상훈 배우는 주연에 대한 야심이 느껴졌달까. 영원한 조연이란 것은 없지만, 이날은 산초보다 양꼬치엔 칭따오가 더 보였다. 그냥 내 기분 탓인가. 조금 덜 오버해도 좋을 것 같았다.(물론 그 깊은 보조개가 귀여우셨읍니다만...)
그리고 가장 할 말이 많은(...) 도지사와 까라스코. 서영주 배우님 어디 가셨어여;_; 내가 알던 박력 넘치고 유쾌하고 호탕하고 귀여우신 도지사&여관주인 어디갔냐고여!!!!!!!!11... 그래도 까라스코에 비하면 황만익 여관주인은 그나마 벗겨진 머리와 딸기코를 봐서라도 그냥저냥 봐줄만 하다. 그래, 나름 귀염...성이 있으셔. 배준성 까라스코......는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박인배 배우였던가, 아무튼 2012년도에 봤던 까라스코가 더 내 취향. 이번 싼쏜은 물론 체스게임에서 좀 웃기긴 했지만, 그거 외엔... 그냥 일단 외모부터가 제 취향이 아니네여... ㅎ ㅏ..ㅇㅏ...(취존주의) 거기다 목소리나 딕션도 대극장에 적합하진 않으신듯. 어딘가 꽉 막힌 발성과 브라운관에 더 적합할 듯한 목소리 톤이 여름 목감기에 기침을 달고 살던 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외모+발성이 맘에 안 드니 그 다음부턴 어떻게 연기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 솔까 세르반데스가 처음 감옥 왔을 때 비아냥 거릴 때도 비아냥 거리는 느낌이 안 들었다. 그냥 안 멋있어...(징징)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생각보다 여관여주인의 임팩트가 약했다. 오프닝의 처연함도 왠지 모르게 덜한 기분(탓인가.) 진짜 기쎈 아줌마 느낌이라기보다 그냥 뚱뚱한 처녀같았달까...(네?) 신부님은 선방하신 거 같고, 노새끌이들도 괜찮았다.(특히 2012년도에도 그랬지만 '새야, 작은 새야' 선창하는 분은... 호ㅏㅇㅏ... 명존쎄) 페드로가 살짝 발연기 느낌이 낫지만 뭐... 페드로 정도는 피곤하니 넘어 갑시다. 김호 이발사와 김명희 가정부는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아서 왠지 고향에 온 기분ㅠㅠ 안정감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발사 왤케 귀엽죸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테엽인형 같은걸로 만들어서 내놓으면 하나 사고 싶을 정도. 박은미 안토니아는 2012년도의 배우보다 더 가증스럽고 귀여웠다.(웃음)
무대는 2012년도가 잘 기억에 안 나긴 하지만, 감옥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철제 난간이 새로 생긴듯?(불확실) 계단만 쭉 이어져 있던 예전 무대가 좀 더 깊은 동굴같은, 감옥같은 느낌이 났던 것 같다. 아무래도 안전의 위험이 있으니 나쁘지 않은 변화같다. 뭔가 디큐브 자체가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른 곳보다 아담하단 느낌? 웅장함과 화려함(이 있는 극이 아니긴 하지만)은 전보다 덜한 것 같다. 뭐, 아쉬울 정도는 아니고.
항상 후기 쓸 때는 짧게 써야지, 류님 멋있단 얘기만 쓰고 말아야지...() 하는데 쓰다보면 항상 이렇게 또 줄줄 쓰게 된다. 심지어 이번엔 조연들도 세세하게도 적고 말았네. 근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눈물을 왈칵! 쏟은 작품이라 그런지 감회가 남다르다. 작품에 대한 애정도가 많이 올라갔달까. 역시 진정한 명작은 세월을 뛰어넘는 감동을 가진 것 같다. <맨오브라만차>는 누가 봐도 좋지만, 아무래도 현재가 만족스러운 사람보다는 실패를 겪은 이들이, 위로와 희망의 말 한 마디가 필요한 사람이 보면 더 좋은 극 같다.(다만 너무 쩌든 분은 졸음주의) 뭐, 요즘엔 누구나 미생 아닙니까...? 그 옛날 옛적부터 미생들을 위로하시던 돈키호테시여ㅠㅠ 아 다 쓰고보니 류동키 또 보고 싶네.
근데 왜때문에 10주년이면서 캐스팅이...ㅠㅠ (그건 <지킬앤하이드>도 마찬가지긴 했으나...) 역시 지나간 캐스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번 절감하며. 나 죽을 때까지 여왕돈자는 못 보겠지ㅠㅠ 아이고ㅠㅠ 아니 근데 여왕님 뭐하셔요? 아무리 신혼 깨가 쏟아진다지만...ㅠㅠ 이제 그만 집에서 나오세여ㅠㅠ 아무튼 조연 캐스트 때문에 차마 회전문은 안 돌듯. 막공 즈음에 울고 싶은 날 가볼렵니다.(올해 겨울에도 여전히 임파서블 드림에 울 것이 뻔한 미생이기에...) 그리고 제발 충무에서 봬요 류님? 네? 제발? 저 한창 영혼 없을 때라 프랑켄 초연 못봤고요? 제발? 드큘 하지 마세요? 결혼도 하지 마시고요? 저 겨울에 프랑켄 회전문 돌려고 적금 들었단 말예여;_; 진심입니다.(궁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