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4. 00:11ㆍ숨죽인마음
0. 여행
지난 크리스마스 시즌엔 꽤 길게 여행을 다녀왔다. 마음껏 먹은만큼 마음껏 하지 못하기도 한 여행이었다.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한다 이제는. 그렇지만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여행이었다. 역시 내겐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제일 큰 목표였던,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은 역시나 보지 못했다. 아마 이번 대엔 틀린걸까? 어렴풋이 예감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실패할 줄은 몰랐다. 여행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다. 서릿발이 빗발치는 물안개 속에 있었달까. (습도 99퍼센트의 위엄이라니!) 그래도 엄청난 정신력으로 살아 돌아왔다. 내가 그러건 말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청춘들은 고지에서도 각자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끝도 없이 길게 이어진 풋풋한 신입사원 행렬과 마치 서로 능숙한 산악인들마냥 짧은 안부인사를 건네는 여유도 피웠다. 하지만 오후 2시가 지나면서부터 나는 그들을 흐르는 시간보다도 빠르게 헤치며 (거의 날아가는 수준으로) 내려와야 했다. 덕분에 단 1분을 남겨두고 잡아탄 셔틀버스에선 물에 빠진 생쥐꼴로 기절해버렸다. 수학여행때도 몰래 행렬에서 이탈해 제일 먼저 하산해버린 내가, 등산에 'ㄷ'도 모르는, '산 or 바다'하면 주저없이 '바다!'를 외치는 이 내가 옛날 드라마 장면 하나 따라하겠다고 정상 등반을 꿈꿨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내 자신을 너무 과대평과한 결과였다. 등산에는 스틱이 필수였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심지어 날이 맑더라도! 허술한 삼각대마저 가져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발목은 두쪽 모두 아작이 나있을 것이 틀림없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아슬아슬 시간엄수'가 테마였다. 나의 늦장 DNA의 기운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하지만 그만큼 세이프 능력치까지 전보다 올랐기 때문에 샘샘이라고 보면 될까. 적어도 이번엔 (온우주의 긍정의 기운을 모아!) 비행기는 안 놓쳤다. 덕분에 20대 끝자락에 자리한 내 몸만 죽어났지만.
1. 첫싸움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싸움 아닌 싸움을 했다. 말해놓고 보니 이게 싸움인지 아닌지... 그냥 투정? 토로? 였나. 아무튼, 얼굴 붉히는... 아니 눈시울을 붉히는 일이 벌어지긴 했다. 이건 내가 그동안 묵묵히 눈 감아주고 있던 것이었는데, 하필이면 타이밍 좋게 마지막날 크게 터져버렸다. 계속 가만히 봐줬더니 진짜 가마니로 알고 있었는지. 아무튼 결론은 좀 싱겁게 잘 얘기해서 마무리했다. 우리는 둘 다 야알못이고 관심도 없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축구 규칙을 들이밀었다. 내겐 3진 아웃이 아닌, 경고 2회 퇴장이다. 한번만 더 같은 짓을 벌였다간, 깔끔하게 안녕하는 것으로!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혼자 그 전날 악몽꾸고 소설쓰고 구질구질 난리도 아니었다.)
2. 수영
드디어 수술 후 첫 수영을 했다. 평소 다니던 센터가 문을 닫아서, 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소문대로 구에서 관리하는 곳이라 그런지 엄청 크고 세련되고 대체적으로 좋았다. 이래서 사기업은 역시 안돼. 확실히 50미터 레인이 힘에 부치긴 했지만, 생각보다 실력이 엄청 떨어진 상태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몸의 기억력이란!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돈이 헛되지 않았구만. 오랜만에 물 속에 풍덩 들어가니, 엄마 품 아니 극세사 이불을 둘둘 휘감은 것 같은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 여기지 바로. 내 홈 스윗 홈! 다시 태어난다면 (안 태어나는 게 베스트지만) 기필코 돌멩이가 되리라! 했지만, 요즘엔 고래가 되고 싶다. 더 자세히 꼽자면 내 사랑 혹등고래.
3. 운전
최근 게으름 및 자신감 증폭으로 인한 폭풍같은 드라이브로 나날이 운전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경로이탈 및 차선변경쯤이야! 아직 딱지가 날아온 적도 없다. 주차가 제일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주변에서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나의 원대한 꿈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동해를 훑는, 먹방 드라이브다. (여기서도 역시나 먹는 것이 빠지지 않는다.) 강원도 눈이 다 녹으면 출발하리라! 그전에 체력도 좀 비축해놓고. 아무튼 이래저래 뭘 하려면 체력이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