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2. 02:03ㆍ숨죽인마음
0. 이제껏 말하기를, 진심으로 스스로 인정하기를 미루고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 딱히 서른즈음이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심경의 변화는 아니고, 그냥 우연의 일치이다. 아니, 더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1. 심경 변화의 이유
a.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극히 나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다. 지금 난 그와 함께해서 행복하다. 여태까지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나는 내 주변환경에 비해 유달리 지독스럽게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인간이었다. 물론 그 이유를 나름 찾자면 찾을 수 있지만, 또 바꿔 생각하면 "왜 그토록 넌 유달리 부정적이니?"라고 모두가 물을정도로 이상하리만큼 부정적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부모보다도 내 부모님은 이해심이 깊고 항상 날 아끼고 사랑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건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솔직히 여지껏 캥거루짓 하고 있는 것도 다 부모님의 넓은 (전생의 업보가 깊은 탓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량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내가 마당발은 아니어도 한번 연을 맺으면 쉽게 끊기진 않는 편이다. 나 스스로는 이해할 수 없는데 그래도 꾸준히 연락해주는 지인들이 존재하니 참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나만큼 부정적인 사람이 없는데, 다들 부정적인 나를 잘 받아주고 이해해준다. 물론 내가 우스갯소리처럼 소원이 죽고싶다고 말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다들 날 그냥 웃긴 소리나 하는 실 없는 애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나도 편하긴 하지만. 아무튼 돌아보면 인복이 꽤나 있는 편이라 사람들로 인해 얻는 행복도가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행복도에 비해 '대인력'이 저질체력만큼이나 낮은 인간이다. 일주일에 두 개 이상의 약속을 잡으면 방전이 나고 맥을 못추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잠수 타버리고 싶어하는 인간인 것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트러블이라도 날 때면 주말엔 아무도 못 만난다. 개복치라 멘탈 한계치를 넘어버리면 몸이 작동을 안 한다.
그런 내가 아무리 만나도 대인력이 고갈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 만나면 항상 할 말이 넘쳐나면서도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어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고, 말하면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삶에 대한 지향점이 같고, 살아온 나날들 속에 공통점이 무수해 가치관이 같다. 무엇보다 얼굴만 보고, 안고만 있어도 좋은, 그저 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가득차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는 안 보면 보고싶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사람이다. 그 사람은 분명 내 인간관계 카테고리에서 이전에 없었던 특별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전에 사귄 남자친구들에게 이런 깊은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건 혈연관계로 얽힌 가족도,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친구도 아닌 것이다. 지난 스물 아홉 해 동안 내 인생의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배우자'란 카테고리인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 사람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동안 내가 나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 먹고 보고 즐기며 살면서 느꼈던 행복과는 또 다른 레벨의 행복감인 것이다. 그를 만남으로써 나는 나 개인의 더 큰 행복과 영원을 꿈꾸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소위 "이번 생은 틀렸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아끼는 가족과 지인들의 행복만을 빌었었다. 내 인생을 빨리 끝나길 소원하며. 하지만 그를 만난 이후 난 더 큰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이제 당연하게도 내 행복이 제일 중요해졌다. 물론 내 행복이 그의 행복일 것이다.(웃음)
b. 위와 연결하여 난 가족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는데, 특히 내 부모님이 바라는 행복이 다른 부모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요근래들어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그 '평범' 속에는 비단 본인들 및 자식의 건강과 출세 등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목표(?)는 자식의 출가와 대를 잇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본인들의 지난했던 삶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시는 듯하다. 물론 예전에는 당신들이 생전에 이리도 덕을 많이 쌓으셨으니 현생에는 보상을 못 받아도 훗날 엄청난 천국에 가실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남들이 들으면 부모 먹이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의 불효녀아닌가 싶지만) 일찌감치 단념케 하려고 했었다. 대신 나 혼자 힘으로 부모 봉양까진 아니더라도 함께 늙어서 가족 모두 꼬부랑 노인들이 될 때까지 꽁냥꽁냥 살아봅시다, 란 마음이었다. 여태껏 받은 은혜 다 갚진 못해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 다니며 사는 것 정돈 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게 내 나름의 효도라 생각했다. 덕분에 지금은 내 결혼에 대해 거의 단념하신 상태긴 한데 (조기교육, 아니 세뇌가 이리 중요합니다) 여전히 자식의 출가와 번창이 당신들의 삶에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이제라도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c. 사실 이게 오늘 이 결심을 하게 된, 우습지만 가장 큰 이유다. 난 이 나이 먹도록 (사실 요즘 서른이 어디 옛날 서른인가요? 여즉 애지 뭐.) 청개구리 기질이 있다. 오랫동안 잠잠했었는데 오늘 그 기질이 또 다시 발동했다. 이유인즉슨, 오늘 남들 보기에 행복하고 완벽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결혼 및 출산 예찬가 중의 한 분을 만났다. 그녀의 결혼은 완벽해보이지만, 사실 내 기준에선 치명적인 단점(애틋함을 가장한 시월드 또는 무던함을 가장한 호구같은 남의 편)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완벽한 조건은 없다. 누구나 하나쯤 흠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게 내가 충분히 용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 단점이라면 까짓거 결혼 그거 할 수 있다. 물론 'The Power Of LOVE'란 전제조건이 강력하게 있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기준에서 내 사람은 기준미달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아니다. 오히려 그게 내게 매력인 것이다. 그녀와 나는 배우자를 보는,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까. (그녀는 긍정의 끝이라면 난 부정의 끝을 달린달까.) 사실 나는 그녀가 이 결혼을 하지 않길 바랐지만 결국 그녀는 했고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보기 좋다. 내 기준에서 단점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그녀 왈, 출산 후 더 큰 행복을 찾았단다.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역시 진리의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주변의 기준따위 상관 없다. 언제 내가 주변 사람들 기준에 맞춰 살았던가? 물론 이건 내 삶의 지난 많은 선택들 중에 단연 가장 큰 선택일테고 그러므로 좀 더 신중하게 주변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그러기 싫다. 그냥 이번에도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고 싶다. 단순한 패기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행복한 존재에 대한 반항?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소녀시절 좋아했던 아이돌의 자작곡 노래가사가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보란듯이 잘 살아나갈테니...!' 이 나이를 먹도록 난 여즉 철이 들지 않은 빠순이에 불과한 것인가? 일찍부터 부정적인 어린이었던 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 노래하던 그들을 좋아했었다.(현재는 오히려 싫어하는 아재들이 되어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 또 한 번 나에게 "아마 안 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콧대를 꺽어주기 위해(...)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해서 성공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 같다.
여태까지의 내 선택들 중에 후회되는 선택은 없었다. 물론 선택 후에 힘든 적은 많았지만 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힘듦이었고, 그 이후엔 나름대로 성장했다. 그 도전과 성장, 실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난 그토록 부정적이면서도 단 한 순간도 과거를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내 지난 과거들은 모두 힘들었으므로. 난 밝은 미래로만 나아가겠다. 그러기 위해서 또 한번 내 뜻대로 선택을 하리다. 그리고 증명하겠다. 난 역시 행복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 모든 내 생각의 흐름의 과정들을 남들에게 설명하고 내 상대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싶진 않다. 그냥 내가 남들 결혼식이 갔을 때 영혼없이 축하해주고 후에 영혼없이 카톡 프로필사진을 보며 '음, 잘 사는군'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로만 남들도 나에 대해 대충 생각하고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남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니까.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고 나 자신이 행복하면 그만인 것이다.
d. 하지만 궁긍적으로는 내적 변화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도 몰랐던 또 다른 자아의 발견이랄까. 처음엔 그 사람이 날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나에게 불편하고 인위적이거나 꾸민 것이 아닌, 단순히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또 하나의 나'였던 것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자, 결혼이 더이상 거북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평소 '하이드'였던 내 안에서 또 다른 나 '지킬'을 꺼내준 '루시', 아니 '엠마'같은 그 사람과 내 인생이란 작품에선 행복한 엔딩을 맞으리라.
2. 부가설명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래야 내가 나중에 흔들릴 때 (분명히 그런 순간이 올테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건 내게 중요하고, 내 인생에 없을 거라 단언했던 큰 이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간 장거리가 예정되어 있다. 여자대장부답게한 내 선택이고, 모두에게 지지를 받은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걱정이 되면서도 사실 전혀 걱정이 없다.(??) 1년동안 더 단단해지고 내 결정에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결혼을 위한 준비기간이라 생각하면 더 좋겠다.
어차피 모든 것은 순리대로! 내 사주팔자는 너무나 잘 풀릴 팔자여서 (부정적이면서도 낙관론자인 이 아이러니가 이 팔자때문인가...? 쑻) 결국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잘 살 것이다. 원래 팔자란 것이 타고나길 그러해서, 잘 풀릴 팔자를 타고나면 누굴 만나도 잘 산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