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3

2021. 4. 23. 15:24숨죽인마음

0. 요즘 일상에 짜증과 우울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1. 코로나는 이제 더 이상 끝나지 않겠지. 덕분에 언제나 어려울 회사, 마찬가지로 어려운 세상경제. 앞날이 너무나 불투명한 요즘. 난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아닌데도 이러한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니 맨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다. 퇴근길에도 하루하루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나? 생각이 들어 만사 다 손에서 놓고 싶어진다.

특히 지금 당장 집중할 일이, 프로젝트가 없다는 것이 날 가장 괴롭게 한다. 물론 해야할 일은 있지만 내 생각만큼 생산성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하고 싶지가 않다. 기획안을 새로 작성해도 항상 나중을 기약하며 일이 밀리고 또 밀리니 영 의욕이 안 난다. 어서 실행을 하고 싶다구요! 앉은 자리에서 기획만 백날천날 그만 하고!

하지만 세상에 돈이 풀려도 우리에겐 쉽사리 풀리지 않으니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이 자가당착의 순간에 나는 만만한 사람에게 짜증과 패악질을 부리며 순간의 짜증을 풀어낸다. 내가 생각해도 참 못났다... 그치만 너무나 유유자적한 (본인도 속이 타들어가겠지만) 사장이 날 너무 짜증나게 하는걸!!! 어제도 사장에게 짜증 한번 내고 일찍 퇴근해버렸다. 그리고 도저히 남의 눈치를 봐줄 기분이 아니라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되는데, 참으로 기분이 태도가 되는 나란 인간...) 오늘은 재택근무를 자처했다. 이게 바로 스타트업의 장점(??)이다.

2.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규정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혈액형, MBTI, 별자리 등등. 어떤 틀에 가두는 순간 그런 타입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한 가지 타입으로 규정할 수 없고 누굴 만나느냐,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입체적으로 굴지 않나? 물론 미세한 기본적인 기질은 다르게 타고 날 순 있지만.

난 언제나 나정도면 보통에 평범하지~ 란 생각을 하며 20대 초반까지 살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록 내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비상하다는 게 아니고, 그냥 이상한 인간에 가까웠다. 특히 강약약강의 이기적인 소시오패스 기질이 더욱 잘 개발되었다. 주변사람들에게도 공공연히 광고하고 다닌다. 나 잘못 건들면 좆되는 거 시간문제라고. 실제로 이런 '미친개'적인 삶은 때때로 유익함을 준다. 참 이기적이게도. 지랄하는 자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강약약강에 특화된 K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필요시 악다구니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인간과 부딪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30대 중반이 되니 정말 화를 낼 기력도 없어서 웬만하면 흐린 눈하고 뭐라 떠들던 흘려 듣는다. 내가 아무 반응 안 하고 대충 받아주며 지내며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면 상대는 내가 괜찮은 줄 알더라. 그래서 가끔은 있는대로 발작적으로 성질을 내준다. 적당히 하라는 경고성으로. 그럼 또 며칠은 내 눈치 보느라 잠잠해진다. 인간이란...!

3. 내가 살면서 가장 존경하고 믿는, 나의 유일한 대나무숲같은 사람. 우리 엄마에게 또 고민을 털어 놓았다. 엄마는 단번에 "너 또 지금 회사에 실증났지?"라고 물었다. 정답이었다. 난 내가 유독 이렇게 별나게 지랄맞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었다. 내 부모님은 전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성실하고 묵묵한 전형적인 헌신적인 K-부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좀 차분할 뿐 '전형적인' K-엄마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사람들 밑에서 태어난 나는 왜 유독 어디에도 진득히 정착을 못하고 항상 불평불만에 휩싸여 붕붕 떠다니는걸까? 20대 중반부터 계속 해오던 고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만은 그냥 그렇게 타고나서 인 것 같다. 이건 누구 탓도, 어떤 성장환경의 탓도 아니다. 그냥 난 그렇게 태초부터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생명이 만들어지는 순간 복불복의 확률로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4. 사실 세계경제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어딜가나 모두가 얘기하는 지긋지긋한 주식과 코인 이야기도, 내 동년배들이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연애, 결혼, 노후에 대한 이야기도, 무능력한 사장과 세상만사에 너무 예민하고 매사 공격적인 90년생 후배들도. 다 나름의 이유를 들어 나의 짜증에 대한 원인이라 규정지을 수 있겠지만, 사실 그냥 난 이 루틴함에 또 실증이 나고 만 것이다. 1~2년 정도 버티면 항상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런데 이젠 어디로 세계여행을 훌쩍 떠나 기분을 리셋시킬 수도 없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쉽사리 이직할 수도 없다. 사면초가다.

5.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무엇으로 버텨내야 할까? 최근엔 NCT에도 완전히 흥미를 잃었고, 즐겨봤던 브이로거들에게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싯팔! 그래도 이맘때즈음이 되면, 초록초록해지는 주변 환경에 약간 기분전환을 하며 새삼 겨울을 버티길 잘했다, 뭐 이따위 생각을 하곤 했는데. 요즘엔 초록잎이 돋아나건 말건, 날이 또 더워지는 것 자체에도 짜증이 나더라. 이렇게 매사 짜증이 나는 것 자체가 너무 짜증난다ㅠㅠ... 진짜 내가 죽으면 이 고통도 끝날텐데. 모르겠네... 싯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