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연인

2011. 1. 14. 14:21마음에남아


Cuban Boyfriend, 2010
다큐멘터리
감독 정호현
출연 Orielvis(오리엘비스), 정호현 (훌리아)
@위드블로그 시사

 
  <쿠바의 연인>이란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일단 '쿠바'라는 나라가 가진 열정적이고, 활기차고 뜨거운, 대체로 긍정적인 이미지들이 떠올라 단박에 끌렸다. 거기다 '연인'이라니! 나는 보통 '다큐멘터리' 하면 대게는 정적이고, 사회문제를 다루고 그래서 보고나면 되려 마음이 무거워지는 장르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다큐멘터리3일 같은 프로그램은 조...좋아합니둥ㅋ_ㅋ) 그런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아주 깨알같은 재미와 레알 인터네셔널 러브가 넘쳐날 것만 같은 내용이 기대되니 시사회 신청을 안 할 수가 업ㅋ엉ㅋ (짧은 예고편과 포스터의 힘이 컸다^_! 역시 요즘은 마케팅의 세상이라능) 그렇게 해서 잔뜩 기대를 가지고, 시사회를 신청했고 뽑혔다! 꼐이! 시사회 당일엔 눈이 왔고, 난 또 길을 잃었고 (더이상 내 감은 믿지 않겠어ㅓ...흑) 결국 8시에 간신히 극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화는 아주 귀여웠고 재밌었으며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로맨스에 국한된 다큐는 아니였다 역시?ㅋ_ㅋ)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다. 하지만 이 '모두가 평등'이란 이상적인 이념은 결국 '모두가 가난'이란 결과를 초래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속성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자'란 걸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까.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 이는 모든 동물들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이자 욕망이 아니겠는가.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댓가를 받을 수가 없다면, 어느 누가 성실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는가? 이건 그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나랏님들의 '욕망' 아래 만들어진 빚 좋은 개살구 이념일 뿐이다. (갑자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st.가 되어버렸다능^_^;;)
  영화 초반엔 한인 후손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웃주민 신고로 감독이 더 이상 촬영을 못하고 쫓겨난다. 아마 카메라를 든 낯선 외국인이 집 안을 들락거리니 수상해서 신고한 것 같다고 했다. 그녀를 다른 지역으로 데려다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그 취재가정(이라고 하니 어감이 어색돋네^_;)의 남편이 한 말이 아주 재밌었다. 신고한 이웃주민을 욕하며, 우리 집에 외국인이 있어서 부러워서 신고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곤 공산주의가 아니라 '질투주의'란 표현을 쓰는데 그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결국 인간에겐 남의 떡이 더 커보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가졌을 때 질투를 느낄 수밖에 없다. 허울좋은 이념따위!
  칫솔 하나를 사려면 며칠은 일해야 하고, 한달 월급은 20달러에 불과한데 콜라캔 하나가 0.55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활고 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엔 그늘이 보이질 않았다.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는, 지하철 속 우리나라 사람들의 잔뜩 구겨진 얼굴들(아아 밥벌이의 어려움)이 그들에게선 보이질 않았다. 영화 속 쿠바인들은 시시때때로 춤을 추고 노래했다. 박자에 맞춰 스텝을 밟던 학생들도, 만원버스 속 어떤 남자도, 쿠바의 연인 오리엘비스의 가족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로(오리엘비스의 애칭)의 대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국과 같은 침략의 역사를 겪은 쿠바인들에게 음악과 춤은 생존의 수단이었다고 말이다. '생존'이란 단어가 머리에, 가슴에 아주 콱 박혔다. 거기에 어느정도 낙천적인 그들의 성향도 한 몫 했겠고. 언제나 생각하는거지만, 날씨와 기후는 사람들의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그렇게 태양이 이글이글하고, 햇살이 가득한 곳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벽을 새로 페인트 칠하던 또 다른 커플의 대화도 아주 재밌었다. 새해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여자는 큰 집을 갖는것과 쿠바 전역을 여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건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조금 더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들에겐 유토피아에 가까운 일이었다. (단지 시간과 돈을 이유삼는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한 건가?)

  감독과 오로의 연애 스토리는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된다. (사실 관객 대부분이 기대한 장면이거늘!) 하지만 그들의 답을 들으니 또 고개가 끄떡끄떡. 연애할 때는 카메라 들이댈 정신이 없었다며^_^;;...조, 조은 연애다! 솔로는 그저 웁니둥. 여튼, 결국 오로가 한국에 왔다. 그리고 벌어지는, 예상 가능한 한국에서의 문화충격과 많은 반대들! 문화충격은 나에게도 충ㅋ격ㅋ을 안겨주었다. 쿠바에 지하철 노선 하나만 있어도 교통문제가 해결될거라고 즐거워하던 오로는 금방 한국의 지하철 aka 노인분들의 새로운 휴식처, 움직이는 노인정 문제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정이 넘치다 못해 오지라퍼로 변질되어버린 한 할머니의 말세드립 으잌ㅋ 오로의 레게머리를 보며 "저게 바로 말세의 징ㅋ조ㅋ닷!" 지렁이를 후라이팬에 올려 놓으면(아니 왜 지렁이를...) 꿈틀대는 것이 바로 말세라며, 세상에 꿈틀대는 것은 다 말세의 징조라능...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열심히 오로의 머리를 만지고 비비고 꼬아 주셨다. (응?)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한 일이라지만(??) 도무지 오로의 생김새가 이해가 안 된다는 할머니... 파마가 참 잘 되셨더라구효^_^! 
  컬쳐쇼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지하철이나 명동 길거리에나 있는 줄 알았던 독실한 신자가 요기잉네? 감독의 어머니 역시 '구원'을 믿는 분이였다. 하지만 그런 종교적 갈등(이라기 보다... 결국엔 그냥 보수적인 한국인 어머니의 반대지만)도 잘 극복했다. 오로의 인터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대체로 누군가 질문을 하면, 오로는 바로바로 아주 현명한 대답을 한다. 이 말들이 하나같이 내게 아주 콱콱 들이박혔다. 마냥 춤만 추는 사람은 아니었다ㅋㅋ) 그녀 어머니 기준에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을 베푸는 거니까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서로 그 기준과 가치가 같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지만, 일단 그 마음만은 감사하다는 그런 늬앙스였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거나 다르면 모두 '옳지 않다'고 판단해 버리는 건 좋지 않다는 말도 함께.
  영화엔 오로의 모든 면면들이 보여지지 않으니, 내가 그들을 어떻다고 판단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서 보여진 그는 아주 매력넘치고 깊은 생각을 가진 성숙한 '인간'이었다. 만일 내가 그런 환경에 놓인다면, 난 단박에 그런 제안들(구원에 이르는 길...수련...기타 등등)과 구원드립을 걷어차고 욕을 한바탕 했을 것이다. 난 '변질된' 종교에 대한 믿음과 그 행위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렇게 좋은거면 너나 믿으세요!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쳐올려도 모자를 판이니까. 개개인 각자 삶의 가치와 기준은 다르다. (종교든 뭐든) 그래서 나도 부모님과 자주 싸우는 편이다. 자신의 기준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그 믿음만큼 나와 다른 타인도 인정해줄 줄 아는 용기(이는 '아량'이나 '미덕'의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정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할 때도 있다)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알면서도 난 또 아빠와 싸우겠지...^_^; 그것이 인ㅋ생ㅋ

  오로는 빠르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한국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소비 그 자체"에 너무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고. 소비가 물론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쿠바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 말이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옷은 매 계절마다 사는데, 어째 옷장에 입을 옷이 없어! 작년 이맘때즘 뭐 입고 다녔지? 벗고 다니진 않았을 거 아냐?" 그리고 사고, 또 산다. 소비 행위 그 자체로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채우려고 발버둥 친다. 나만해도 (돈이 없어서 사진 못하고 흐규) 매일 쇼핑몰을 구경하고, 위시리스트를 업데이트 한다. 제품, 공연, 맛집 후기가 올라오는 블로그들은 즐겨찾기를 해놓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안 펴보고, 매일 서점에 책 보러 간다. 영화, 드라마는 엄청 다운 받아놓고 정작 시간이 없단 핑계로 아직도 못 본게 수두룩하다. 그냥 다운받는, 소비하는 행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취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다. 이를 나쁜 습관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딘가 공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 우리는 가지면 가질수록,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소비를 하는 순간이 주는 즐거움이 너무나 커서, 마치 마약처럼 '소비'에 중독되어 버린 것일까. 그래서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즐거움은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 물론 이 역시 각자의 기준과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집에 콕 박혀서 잉여생활이나...(언제나 그랬죠 늘 집에 있었죠)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4명 정도 질문을 받았는데, 운 좋게 나와 같이 간 친구도 질문할 수 있었다. (우린 둘 다 종교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그에 관련된 질문을 했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여성시대st.의 질문을 한 선생님도 있었고, 굳이!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해서 우리에게 좌절감을 맛보여준 분도 있었다^_;; 진행을 맡은 윤성호 감독의 입담도 아주 재밌었다. 아주 유쾌한 시간이었다. 어쩌다 오로가 선생님으로 있는 학교 교장선생님 소개까지 있었는데, '교장선생님'같지 않은 교장선생님이었다. 근엄하고 인자하다기보단, 여유롭고 친근한 느낌! 오리엘비스의 애칭 '오로'가 스페인어로 '황금'을 뜻한다고, 호현감독에게 황금이!라며 선생님답게 유익한 정보도ㅋㅋ 
 
  어느 나라든 어느 지역이건 문제는 있고, 완벽한 곳은 없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을 수 있는 곳이 최선! 영화 속 감독의 질문에 "너만 있으면 돼"라고 주저없이 답하는 오로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눈이 초롱초롱*_* 빛나던 남자를 쳐다보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었다고 말하던 그녀 역시. 아름다운 커플입니다.
  더불어 쿠바, 꼭 한 번 가보고 싶네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