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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7. 00:02숨죽인마음



0. 유럽 여행 내내 봤던 <섹스 앤 더 시티>를 다 봤다. 마지막 에피소드마저 파리를 다녀온 캐리의 이야기로 끝이 났다. 꿈 속을 걷던 지난 시간들이 드디어 끝난 것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마치 내 친구같은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온통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서, 그 네 명의 미국 여자들이. 뭔가 아쉽네. 드라마가 끝나서 아쉬운 것 보다, 나의 여행이 끝났다는 기분이 든다. 특히 캐리가 파리에서 느꼈던 쓸쓸한 감정들을 나도 느꼈던 적이 있어서 더 그럴지도. 어쨌든 끝이다.

1. 오늘 밤에 한 KBS 스페셜과 SBS 스폐셜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거 재밌네.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KBS 스페셜이 더 이른 시간에 해서, 엄마 아빠랑 같이 보면서 엄청 얘기를 나눴다. 대학 오로지 인서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학생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 목표가 드디어 이뤄졌을 때 나는 한동안 방황했다. 일단 결과가 어찌되었건 결승점까지는 왔다. 그러나 그대로 삶은 끝나기는 커녕 이제 새롭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기력은 다했는데, 여전히 다른 이들은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어떤 목표를 또 다시 세워야 하는지 몰랐고, 대학은 왔지만 어른들 말처럼 마냥 개운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거기에 넘쳐나는 '자유'까지. 이는 주체할 수 없는 자유였다. 자유의 댓가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할 틈도 없던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자유=술과 유흥' 그 뿐. 그리고 흥청망청 자신을 소비한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은 알지 못한 채, 그 간의 입시 스트레스를 몽땅 해소하듯, 누군가에게 복수하듯 말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은 이 시기를 거의 다 겪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이 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미리 귀뜸해 주지 않았다. 이 혼란의 극복 방법은 새로운 목표 설정 뿐이었다. 바로 스펙쌓기. 난 바로 여기서 진로이탈 해버렸다. 그런 챗바퀴 도는 삶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렇게 남들만큼 벌고, 남들만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인지. 어느 누구도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바람직한 삶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들 은근히 강요하고 압박한다. 나의 부모의 부모가, 또 그의 부모가 그러했듯.
  몇 천 년이 흘러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덴마크 사람들처럼 행복하다고 느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없이 남이 가진 행복만 시기하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는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할까! 하고 너무 스스로를 몰아 세우진 말자. 세상 사람 모두 같을 수 없잖아. 모든 조건이 같을 수 없고. 그냥 현재를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현재에 안주하라는 게 아니고. 인정.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끝나고 보는 SBS 스페셜은 또 느낌이 다르네. 개인적으로 <시크릿 가든>은 주원, 라임의 치고받는 대사 외에는 별 재미가 없었다. 깨알같은 순간순간의 대사들 빼고는 영 흐름이 허술. 주원이 여동생은 죽었나 나오다 말고. 갑자기 어머니 비서가 김비서만큼 깨방정을 떨질 않나. 현빈, 하지원의 커플 연기도 마음에 닿을만큼 달달하지도 않았고. 해병대 최고령 지원자 현빈 밖에 마땅히 떠오르질 않는군. 아 이건 그냥 이상적인 '내 짝'을 만난 주원 라임이 인어공주 드립 집어 치우고, 세쌍둥이 부모가 되어서도 외모 변화 하나 없는 게 배가 아파서 하는 소리다. (손예진의 특별 출연과 오스카 콘서트 때 연출의 "두 번째 스케치북 준비"가 들리는 등 영 허술한 마직막 회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