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2011. 4. 7. 04:08ㆍ마음에남아
Kiss of the Spider Woman
원작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연출 이지나
11/04/06 몰리나 박은태 / 발렌틴 최재웅
원작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봤다. 원작을 읽고 극을 봤다가 실망한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역시나 원작을 읽지 않고 극을 보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사실 아주 안 읽은 것은 아니다. 공연보러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 근처 대형 서점에 쭈구려 앉아서 1, 2장만 읽고 갔다. '표범여인'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은 다 읽고 간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단 생각이 든다. 거의 극 전반에 계속해서 뜨문뜨문 표범여인 이야기가 등장히기 때문에, 극에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얘긴가 싶기도 했을 듯.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이었지만, 크게 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다 할인 받을 꺼리도 생기고, 스프링 어웨이크닝 캐스팅이 그닥 끌리지 않아(?) 에랏! 하고 보러 갔다. 자리는 S석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공연장 규모가 크지 않아서 다행. 거기다 챙겨간 망원경도 한몫 톡톡히 했다. 일단 표정이 잘 보이니까 감정이입도 잘 되고, 연기도 이해하기 쉽고. 내 망원경느님 사랑합니동S2 (순희시절이 있어서 다행인가ㅋㅋ) 자리는 크게 문제 없었는데, 다만 오늘도 관크가... (ㅠㅠ) 뒤에 앉아 있던 커플들이 도중에 나가버렸다. 뭔지 모르고 보러 왔다가 '이건 좀 아닌듯'해서 나간 것 같은데. 세 커플이나! 세 커플이나! 나감. 내가 계단쪽에 앉아서 좀 신경쓰였는데, 그냥저냥 넘길만 했다. 전에 류지킬 때 직장인 관크를 너무 당해서, 그거에 비하면 애교수준^_^?
은몰리나, 그녀는 너무 예뻤다...!
섬세한 손동작, 발동작, 말투며 목소리, 표정까지. 그는 등장부터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정말 '그녀'였다. 원작의 몰리나가 완전 미녀 이미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정몰리나가 더 맞는 캐스팅인 것 같고) 은몰리나는 너무 위화감이 업ㅋ엉ㅋ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짙은 아이라인의 위ㅋ엄ㅋ (워터푸르프 쓰셨나봐효^_?) 거기다 표범여인과 비슷한 고양이 얼굴인 것 같기도? (아이라인느님의 영향인가...ㅋ) 여튼 그녀의 간드러지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극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머리에 두르고 있는 스카프와 꽃무늬 가운까지.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녀가 꿈꾸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굳이 원작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말이다. 웅렌틴 역시 상처입은 혁명가 그 자체였다. 사실 극 초반에는 은언니에게 너무 집중하느라 발렌틴을 잘 못봤다. 은몰리나가 약간 새침하면서도 은근 깜찍하고 귀여운, 깨알같은 연기를 보여주길래 (ㅋㅋ) 고새 또 빠져서 이거 뭐 망원경을 뗄래야 뗄 수가 없네^_^? 거기다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마음을 완전히 연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몰리나에게 시선이 더 갈 수밖에 없었다. 은언니 보면서 간간히 프런코 간교수님도 떠올리고(...응?...).
사실, 몰리나가 발렌틴을 사랑하게 됨 -> 발렌틴도 변함 (사랑인지 우정인지 뭔지는 캐스트에 따라 다른 것 같은?) 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사랑을 느끼고, 잘해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긴 했는데... 또 보다보니 어느 부분에서 사랑에 빠졌는지 아리송하기도 하고? 싸우다 정들었나? 아니면 원래부터 발렌틴이 이상형이었는데, 아닌 척 까도녀처럼 군 건가? (ㅋㅋ) 표범여인 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간간히 애드립인지 뭔지, 은몰리나가 웅렌틴에게 새침하게 구는 게 너무 귀여웠다. "너랑은 아주 반대, 완전 반대!" 같은? (대사는 정확하지 않습니당ㅋ) 물론 저런 대사를 통해서도 몰리나가 발렌틴을 좋아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지만. 전반적으로 대사를 너무 무겁지 않게, 약간 가볍기도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몰리나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비해, 발렌틴의 감정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극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나는 발렌틴의 감정의 변화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열심히 표정을 훔쳐봤는데(?) 훔쳐보면 볼수록 모르겠더란 말이지. 몰리나를 이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완전 이용하려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일단 내가 본 웅렌틴은 은몰리나를 사랑했다기 보다는, 이용하려 했다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편지를 대신 써줄 때. 단순히 몰리나의 감정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편지를 쓰는 것 같았다. 발렌틴은 몰리나가 보지 않을 때는 아주 멀쩡한, 아니 약간은 비웃는 듯한 느낌으로 몰리나의 뒷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신 연인 마르타가 그립다는 둥, 난 혼자라 외롭다는 둥, 몸이 간지럽다는 둥. 그러면서 몰리나의 어깨를 잡을 때 그 느낌은! 본격 작ㅋ업ㅋ중ㅋ 발렌틴의 손길에 몰리나가 약간 긴장하다가 풀어지는데, 지켜보는 내가 다 떨렸다. 거기다 은언니 앞머리 왜이리 조신하게 넘김? 넘 예쁜거 아닙니까? (ㅋㅋ) 발렌틴 몸 닦아주면서 좋아하던 그 표정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좋으셨쎄여? (ㅋㅋ)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극 후반부에 은몰리나가 표범여인의 결말을 완전 집중해서 얘기하는데, 웅렌틴은 뒤에 앉아서 웃고있었다! 그 미소! 잊을 수가 없네! 무슨 의미지? 녜? 뭡니까? 웅렌틴 이 속을 알 수 없는 남자같으니!
둘의 정사씬과 키스씬도 실루엣 처리를 해서 큰 거부감은 안 들었다(일단 은언니가 너무 예뻐서...흑흑). 다만 둘의 정사가 몰리나와 발렌틴 각자에게 과연 같은 의미일지? 발렌틴의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보통 남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고 살던 몰리나에게 정말 줄 수 있는 게 생겨 기쁘다고 말한 발렌틴! 그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정말 그도 그녀를 사랑하게 된 걸까? 아니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단순히 그녀에게 맞춰준 것일까? 일단 발렌틴의 어느정도 심경의 변화가 온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게 동정이든 연민이든, 그도 아니면 정말 단순히 철저한 계산에 의한 행위였을지라도. 처음과 같은 마음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겠지. 멀쩡한 남자, 그것도 혁명가였던 그가. 아마 그녀가 그에게 한 말 한 마디가 그를 동요케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 나를 깨웠다고 해야 맞겠다. 이념에만 사로잡혀 있지 말고, 지금 곁에 있는 자신부터 봐달라던 그녀의 말 한 마디! 몰리나가 발렌틴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만질 때는. 정말 숨을 멈춘 채 봤다. 너무나 조심스럽고, 애달팠다. 발렌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로 가만히 울던 그녀... 은몰리나 갈수록 연기가 점점 물이 오른다더니, 오늘 내겐 하나 부족함 없는 몰리나 그 자체였다. (약간 딴소리지만, 몰리나 가슴팍을 만지던 웅렌틴 손에 살포시 겹쳐지던ㅋㅋ 은언니 손... 어쩜 그리 곱고 길고 예쁩니까? 녜? 이거 반칙이에요?!)
확실하게 뭔가 내 안에서 감정정리가 되질 않아서, 결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몰리나의 죽음에 대한 독백을 하는 그 장면은. 그때의 발렌틴은 참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꿈 속의 그녀를, 거미여인을 정말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인지는 음 글쎄. 의문이 든다. 그저 단순히 자신을 사랑해줬고,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그녀에 대한 미안함을 고백하는 것 같아 머리가 아팠다. 아마도 몰리나가 온전히 발렌틴에게, 평범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한 채 죽은 게 너무 불쌍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답게 진짜 사랑에 모든 걸 걸었으니, 그녀는 그 자체로 행복했으려나? 그녀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사랑때문에 행복했다면 이건 해피엔딩인걸까. 아으! 한 번밖에 못봤고, 원작도 읽지 못했고, 하지만 생각나는 대사는 너무 많고. 단 한 번에 감상을 정리하기엔 너무 어려운 연극인 듯 싶다.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만. 또 한 번 보고 싶긴 한데, 시간이 안 맞아서 아마 못 볼듯. 아쉽다!
은몰리나가 극 중간에 노래를 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목소리가 매력적인 은태배우. 왜 다들 은촤은촤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성남 너무 멀어. (ㅠ.ㅠ) 기회가 닿으면 또 다른 곳에서 볼 수 있겠지. 안녕 은몰리나, 웅렌틴! 그런데 은태배우 특성인지 모르겠는데, 약간 발음에 특징이 있는 듯? '~서'를 '~숴'라는 식으로? (ㅋㅋ)
전에 (빌리때문에) 사뒀던 잡지 <더 뮤지컬>을 다시 꺼내봤다. 마침 오늘 본 크로스 페어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둘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뭔가 좀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은몰리나의 해석은 거의 이해가 되고, 웅렌틴은... 아 발렌틴의 시점으로 극을 한 번 더 차근차근 짚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모르겠네. 여튼 그에게 있어 몰리나를 사랑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어쨌든 그에게 변화가 왔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근데 그래도 뭔가 찜찜한게... (ㅋㅋ)
사진 출처 ; www.the music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