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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4. 03:14숨죽인마음

  오랜만의 글. 개강은 언제나 그렇듯, 하는 것 없이 바쁘기만 하다. 분주하다. 봄이니까. 모두 살랑거리고 푸릇푸릇하다. 잠도 깊이 들지 않고, 꿈을 꿔도 다 비슷한 내용들 뿐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어쨌거나 현실은 그대로 내 발목을 잡고 있다. 어찌되었든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는 가수다>를 봤다. 왕의 귀환, 소울 국모, 발라드신 등등 많은 애칭? 닉네임? 수식어가 출연 가수 앞에 따라 붙는다. 방송 내내 나는 '두 번 다시 없을 아티스트들의 꿈의 공연'을 보고 있다기 보다는, 타자가 된 기분이었다. '시청자'로서, 특히나 청자로서 존중되었다기보다는(존중이란 어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들과 노래를 듣는 심사단과 그 외 스탭들로부터 분리되어서 동떨어져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그 곳에 있는 이들은 자아도취 되어 있었다. 노래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아 내가 왕의 귀환을 눈 앞에서 보고 있어! 그들의 꿈과도 같은 노래를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고 있어! 라는 식의. 뭐든지 어떻게 어떤 분위기로 몰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래서 어느 모임에서나 "잘 됐으면 좋겠다~"하고 몰아가면 다 망하는구나...(응?) 서바이벌의 의미가 뭔지, 그 의미를 찾는 게 더 이상 무의미해진 서바이벌쇼는 이제 연기를 하면서 봐야하나 싶기도 하다. 이 환상의 쇼를 보고 감동을 받지 않으면 나는 수준 높은 시청자가 아닐테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호들갑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노래를 따라 불러야 하는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박수를 쳐야하는지 의문이다. 그들을 '완벽한 아티스트'로 포장하면 포장할수록, 나는 프로그램 취지에 의문이 간다. 그렇다면 왜 굳이 '서바이벌'을 붙였는가. 어차피 1등을 해도 명예뿐인, 여전히 7명인, 그렇다면 <음악여행 라라라>를 부활시키지 왜 주말 예능에 어거지로 끼워넣었는지. 단순히 마지막 순위 발표 때 가수들의 긴장한 표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쪼는 맛이나 보고 즐기라고? ...라고 내가 한껏 독설을 퍼부었더니, 엄마가 옆에서 어깨를 툭 쳤다. "그냥 보고 즐겨." 근데 엄마 그러기엔, 다들 너무 비장한 표정으로 인터뷰하잖아. 난 그게 부담이야. 본인 스스로들도 부담 부담 부담을 외치는 이 무대를 어찌 부담 갖지 않고 편하게 보고 즐기겠어? 감히 '신'들의 경연을. 불과 몇 주 전, 케이블에서 하는 <수요예술무대>에 깜짝 출연한 임재범의 무대에선 이런 부담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즐길 수 있었는데. 
  연아의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는 너무 멋졌다.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아름답고, 정말 운동선수가 아닌 한 사람의 '예술가'라고 칭해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그녀의 눈물을, 은메달을, 점프 실수를 강조했지만. 이미 내게는 예술가로 자리잡은 그녀이기에, 더 이상의 점수나 등수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사다 마오의 쓰러져가는 모습은 슬펐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절박해 보였고, 그래서 슬펐다. 어쨌거나 오마주 투 코리아가 주는 감동은. 그것은 내가 연아와 같은 한국인이여서가 아니고, 그런 프로그램을 선택한 도전정신(이라고 해야하나)과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어쨌거나 한 나라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감과 책임감이 따라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