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23. 21:23ㆍ마음에남아
Moby dick
원작 Herman Melville
연출 조용신
11/08/12 이스마엘 신지호 / 퀴퀘그 KoN(이일근) / 에이헙, 선주 황건 / 스타벅 유성재 / 플라스크 外 조성현 / 모비딕, 스텁 장효종 / 네레이드 이지영
국내 최초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며 소문이 자자하기에 급하게 예매를 했다(사실 '텐아시아' 인터뷰를 보고 영ㅋ업ㅋ당함). 화제의 뮤지컬 답게 표가 별로 남지 않았으나, 무대석(그 이름도 돋는 '매니아석') 정말 무대 바로 앞자리 하나가 남아있었다. 작은 규모의 공연장이라 좀 민망하겠지... 싶었는데, 음. 생각 외로 정말 민망하고, 개인적으로는 딱히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자리였다.
무대는 좋았다. 정사각형 무대를 약간 마름모꼴로 틀어놓아서 무대석도 완전 옆모습만 보이는 극사이드는 아니었다. 특히 내 자리에서는 이스마엘이 피아노를 칠 때의 표정이나 동작들이 잘 보였다. 만약 가운데 일반석에 앉았다면 주구장창 그의 등짝만 보고 있었겠지. 또한 극의 배경이 되는 배의 낡은 갑판을 피아노 위로 올려놓아서,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무대전환 없이 하나의 무대 안에서 극이 진행되는 점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최소한의 세트로 극이 진행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그래서 소극장이 더 취향에 맞는지도.) 뮤지컬 넘버들은 역시나 한 번 밖에 보지 않아서 아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좋았다. 일단 배우들(이라고 해야하나 뮤지션이라 해야하나)의 연주하는 모습 자체, 퍼포먼스 그 자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잼이라든지, 각자의 솔로 연주 등. 아무래도 뮤지션에 가까운 이들이 많아서일까. 대사를 할 때보다 연주를 할 때 더욱 감정표현이 잘 되는 것 같았다.
뮤지컬 넘버가 아니더라도 극중 효과음이라든지 여러가지 소리를 악기를 이용해 표현하는 것도 신선했다. 이스마엘이 낡은 여인숙 침대에 누울 때 나던 음산하고 기괴한 삐걱거림 등과 같은. 일단 악기들 자체를 보는 재미가 있었고, 신선했다. 또한 악기를 하나의 소품으로 자연스럽게 용도를 변환시키는 것도 좋았다.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달까. 클라리넷은 망원경으로, 바이올린의 활은 작살로. 선장의 고래뼈 다리는 첼로로 표현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절름거리는 다리를 대신해 첼로는 그의 옆에 언제나 꼭 붙어 있었다. 에이헙 선장 역의 황건은 뮤지컬 배우여서 그런지 확실히 '연기로써' 극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다만 그는 뮤지션이 아니기 때문인지 첼로 연주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언제나 옆에 끼고 있었지만, 정작 연주하는 모습은 별로 볼 수 없었다. 그의 분노와 광기 등을 즉흥적으로 그때 그때 첼로를 통해 표현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직 액터-뮤지션의 경계가 눈에 많이 띄었다.
기타와 스타벅 항해사를 맡은 유성재는... 배우임에도 아주 만족스런 연기를 보여주진 못했다. 선장의 복수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대립하면서 나름 옳은 말을 하는 인물인데... 선장과 마주할 때는 언제나 한 가지 감정, 한 가지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짜증만 가득했다. 근심이나 걱정, 안타까움 등 표현할 수 있는 감정과 표정들은 굉장히 많았을 텐데. 노래할 때도 아주 시원스럽지는 않았다. 근데 이 부분은 소극장 자체의 특성인지. 악기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노래 가사나 대사가 아주 잘 들리는 편은 아니었다. 드럼소리는 저 뒤에 구석에 있는데도 참 컸다. 그나저나 너무 구석에 완전 조명도 죽여놓고, 짱박혀 있어서 안타까웠음
아무튼, 스타벅이란 캐릭터 자체가 이 극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었는가까지 고민하게 됐다. 배우 스스로가 좀 더 확실히 캐릭터를 심화시켜 보여주었더라면. 그저 선장의 카리스마에 묻혀 그의 말에 몇 마디 대응도 못하고 하라는 대로 하는 부하 중 하나로 전락해 버렸다. 선장에게 충언을 하는 오랜 동료 또는 그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니, 원래 설정이 그렇지 않았나? 아무튼 나쁘지도 않고 그냥 so so였다. 배우의 해석이 어떤 것이였든, 내게는 그의 연기가 조금 아쉬웠다. 더불어 기타의 존재도 음...
주인공 이스마엘이나 퀴퀘그 역을 맡은 신지호, KoN 등. 대부분의 배우들은 본업이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를 할 때 여러가지 어색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튀지는 않았지만, 인상적이지도 않은. 하지만 KoN이 노래를 할 때는 조금 놀랐다. 노래하는 목소리가 맑고 깨끗하고 곧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인물의 특성 상 제대로 된 어순의 자연스러운 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노래를 할 때는 또 다른 인물을 보는 것 같았달까.
이스마엘 역의 신지호는 피아노 연주를 할 때가 가장 좋았다. 온 몸으로, 표정으로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수 많은 대사들보다도. 확실히, 확연히. 일반적인 대사를 할 때도 나쁘진 않지만, 아무래도 연주할 때가 가장 좋았다. 그리고 그 역시 특유의 발음이 있어서, 그게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일단 미소가 해맑고, 순수한 사람이란 느낌 그 자체가 이스마엘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기의 아쉬움이 있지만, 극 중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이건 연출의도인지... 덕후 양산을 위한 의도된 장치인지, 내가 썩은건지^_^(정답ㅋ).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유별난 우정이... 너무 빠르고 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청년 둘이 그렇게 쉽게, 그리고 깊게 친해지다니. (단순히 잼 한 번으로 이하 모든 과정은 생략한다.) 물론 이건 망망대해 배 위라는 배경도 한 몫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너무 훈훈한 청년 둘이 쉽게 울고 불고 하니까 전 오히려 의문이 드네효^_; 너무 쉽게 둘을 붙여놓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극의 마지막 이스마엘의 고통을, 오열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스마엘이 보통의 인간-문명-을, 퀴퀘그는 대자연을 대표하는 것은 안다. 그래서 이 둘의 우정과 이별이 극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임은 알지만...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이 말이다. 요즘 그런(...) 문화들이 유행하는 것은 알지만, 그런 유행에 편승해 이야기를 너무 쉽게 짠 것은 아닌지 하는,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님 내가 너무 꼬인건가 그런건가.
물론 퀴퀘그의 뜬금없는 담배드립이 이스마엘과 신뢰를 쌓는 계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어떤 문명이길래 "결혼한다"란 대사를 치는 건가효 헤헷. (웃기는 지점인 것 같은데, 빵! 터지는 느낌이 아니어서 문제.) 어쨌든 퀴퀘그의 죽음 앞에 이스마엘이 오열(대ㅋ성ㅋ통ㅋ곡ㅋ)하는 부분이 이런 의문을 갖게 한다.
그의 오열에 거부감이 든 이유 중 하나는 신지호 그 자체가 역에 너무 흠뻑 취해있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기를 거듭하다보니, 감정이 심화되고 계속해서 증폭된다는 것은 알지만. 다음 노래를 할 때까지도 울먹임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프로'답지 못한 모습이었다. 아주 별로고, 실망이다! 는 아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관객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창작자(배우든, 작가든) 스스로가 먼저 그 감정에 도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열하는 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오열하기 시작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분명 극 중 이스마엘은 처음엔 조금 당황스럽고, 현실을 믿을 수 없는 멍한 상태가 되어야 할텐데도. 아무튼, 그가 감정을 조금 더 조절한다면, 다음 시즌(에도 한다면) 더 좋은 이스마엘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된다.
더불어 이스마엘이 이 극의 화자이면서 중심 인물이자 마지막 생존자인데. 극에서는 막상 그의 존재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도시생활에 지치고 쫓겨난 (스스로 뛰쳐나온 것인가, 아무튼) 그가 선택한 새로운 인생이라는 이야기로 극은 시작되는데도 말이다. 온통 에이헙 선장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스마엘은 단순한 화자에 지나지 않았나?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홍보를 신지호와 KoN에게만 집중해서 하는 것 같던데. 아무튼 극을 통한 그의 심경변화와 자아성찰 혹은 성장 등이 없어 아쉬웠다. 아니면 있었는데도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인가. 아무튼 이스마엘의 내적 성장을 조금 더 분명히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내 기억이 남는 건 이스마엘이 유약하고 수동적인 인물이었다는 인상밖에. 만약 그의 성장을 보여주었다면 (퀴퀘그의 죽음으로 인한 오열 후, 배우 스스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 것이 이스마엘이란 캐릭터 자체를 성장이 없는 인물로 기억하게 만든 것일수도.) 극을 여러번 보고 싶게 만들었을텐데. 내가 극을 통해 뭔가 더 발견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부분이 없어서 아쉬웠다.
바다의 정령이라는 네레이드도 역할이 너무 없어서 아쉬웠다. 무슨 단순한 피아노 주자로 나온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캐릭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 배우들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 홍일점인데 그걸 못 살리나! 그녀를 통해 몽환적인 분위기 조성, 퀴퀘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것은 좋았다. 다만 단지 그것에 그쳐서 좀 아쉬웠다. 거기다 사실 그녀의 목소리 톤은 내가 상상하던 정령과는 조금 달랐다. 엠마st.의 꾀꼬리같은 소리를 기대했는데... 그녀와 퀴퀘그가 서로 대화를 할 때 에코가 깔렸는데, 그게 신비로운 느낌이라기 보단... 음. 뭔가 조금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 전체가 너무 모비딕에 혈안이 되어있는 선장 얘기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그녀의 입을 통해 고래들, 대자연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더 웅장하고 인상적인 넘버가 나올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와 모비딕의 분노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을 비꼬는 것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보통 이스마엘이 연기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피아노 연주를 맡았는데, 연주를 하면서는 자신이 극 중 인물이란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그때만큼은 평범한 세션이 되어버린 것 같은. 여전히 자신이 극 중 인물이고, 연주도 하나의 연기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플라스크나 모비딕 역을 맡은 두 분은 무척 좋았다. 특히나 두 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하는 게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모비딕은 하얀 수트로 갈아 입고 다시 등장했을 때의 그 존재감이란. 다만 생각보다 아주 폭발적인, 클라이막스에 다다른 극을 정리해버릴만큼의 인상적인 곡이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
첼로란 악기가 가진 특성을 잘 모르지만, 그의 솔로로 그런 폭발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든 것인가. 다만 무언가 긴장감이 가득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하지만 그 긴장과 슬픔, 동료들의 죽음에서 비롯된 감정들에서 더욱 더 발전되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모비딕이란 존재가 가진 카리스마를 첼로 하나로만 표현한 것이 무리였던 것 같기도. 내가 너무 대형 뮤지컬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초연되는 창작 뮤지컬이니 아쉬운 점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만큼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마지막까지 아쉬운 점만 말하는 건 나 스스로도 싫지만, 하나만 더 하자면.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극을 아쉽게만 보는 건 배우들이 가진 애티튜드 때문이다. 어느 작품에나 소위 뮤덕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작품에도 있었다니... 그 놈의 회전문은 이토록 설치가 쉬운 것이었군효^_! 무대석을 비롯해 무대와 가까운 곳에 앉은 이들 대부분은 뮤덕들이었다. 내 옆에 앉은 여자는 극이 진행되는 내내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나마 립싱크였다는 것에 감사해야하나.) 극 중간에 퀴퀘그가 관객을 지목해서 대사를 치는 부분이 있는데, 선택된 그녀들 역시 뮤덕. 커튼콜 때는 내 옆에 앉은 여자에게만 노골적인 사인을 보냈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하는 작품을, 배우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열성적이 팬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다른 관객은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그들의 노골적인 자기 팬 챙기는 태도는 별로였다. 어느 작품이든 (특히나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곳일 수록) 특정 팬(이른바 뮤덕)과 교감하는 배우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자신이 극 중 캐릭터라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난 온전히 작품으로만 배우를 만나고 싶기 때문에! 배우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취향 따위 알고 싶지도 않고(ㅠㅠ) 괜히 잘 본 작품 하나 다 쒯으로 만들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