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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9. 00:20숨죽인마음

0. 이번 추석도 어김없이 일을 핑계로 도망쳤다.

1. 돈이 없고, 체력이 없어서 올해는 국내로. 친구와 함께 청평으로 갔다. 급하게 숙소를 정하고 표를 끊었다. 이때부터 무의욕 (도피)여행의 시작.

2. 날은 너무 더웠고, 여름에 특히 취약한데다 상대방 눈치 보느라 자기 주장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두 여자는 숙소 아주머니의 오지랖을 피해 아무것도 없는 숙소 주변을 하릴 없이 배회했다. 덕분에 숙소 근처 음식점에서 시원한 에어컨 쐬면서 음악캠프를 보며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추석 연휴 때문인지 우리 외의 손님은 결국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3. 숙소로 돌아와 뻗음.

4. 해가 질 무렵 어슬렁 일어나 근처 산책을 하고 저녁을 챙겨 먹음. 그닥 만족스럽거나 인상적이지 못한 식사. 역시 내가 차려먹는 밥이 제일 별로다.(난 이미 글렀어...........)

5. 바닥에 이불을 깔고 취침. 아침에 일어나 꼬리뼈가 혹사 당했음을 깨달았다. 아아... 역시 침대는 과학이여... 덕분에 등을 쓸어보다가 척추가 상당히 휘었음을(손으로 만져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깨달았다. 이런.

6. 이곳까지 와서 그냥 가기 뭣해서 근처 수목원을 찾았다. 가는 동안도 힘들었고 수목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은 더 힘들었다. 도무지 의욕이 안 나더라. 물론 무지막지한 광합성과 푸르른 초원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체력이 달리니 상쾌함보다 짜증이 밀려왔다.

7. 심지어 집으로 가기 위해 일찌감치 도착한 터미널에서는 추석 귀경길 정체로 인하야 버스가 1시간 이상 지연되었다. 결국 기차로 노선을 변경해서 예정보다 3시간이나 늦게 서울로 출발. 덕분에 모든 체력이 바닥났다.

8. 서울에 올라와 다른 친구까지 합류해 가볍게 치맥을 했는데, 또 다시 죽음을 경험할 뻔. 이전에 회사 퇴근 후 치맥(맥주 500+배부르게 치킨 섭취)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중, 머리가 핑 돌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안 쉬어지고 금방이라도 정신 놓고 쓰러질 뻔한 경험을 두 번이나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오바이트 하거나 차를 몇 대는 보내고 다시 집에 오곤 했는데... 이번에도 또 같은 경험을 했다. 이제 진짜 술을 끊어야 겠다. 일단 마시더라도 절대 과한 안주는 먹지 않는 것으로...

9. 이번 여행의 결과, 내 몸 상태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진짜 하루 빨리 회사를 때려치고 잃어버린 건강을 먼저 찾아야겠다. 이대로 삶을 끝낼 작정이 아니라면 정말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뚱이는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후... 불과 1년 전에는 (돈이 없어서) 오사카에서 무려 지하철역 4~5 정거장에 달하는 거리를 왕복하기도 했는데................. 이 망한 몸뚱이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