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도둑 - 마커스 주삭
2009. 8. 22. 05:59ㆍ마음에남아
마커스 주삭 作
2008.
<책 도둑>
이란 제목이 뭔가 마음에 안 들었다. 거기다 평들도 하나같이 '성장소설'을 강조했고, 결정적으로 책 표지가 별로였다. 굳이 안 읽으려면 충분히 안 읽을 수 있었는데도, 1, 2권으로 나눠진 이 두꺼운 책을 읽은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사소ㅡ하지만 굉장히 또 중요ㅡ한 이유
1. 대화거리
2. 퓌러, 철십자장의 시대
1. 대화거리
2. 퓌러, 철십자장의 시대
우연찮은 기회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 받았다. 그가 추천하면서 하는 말은 단 세마디 뿐이었다. 오스트리아, 마커스 주삭, 책 도둑. 이 것이 어떤 내용이고, 자신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는지는 털 끝만큼도 얘기해 주지 않았다. 나도 크게 흥미를 가지고 들은 건 아니었다. 적어도 이 당시까지는.
하지만 나중에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이 책에 관해 조금은 길게 리뷰가 적혀 있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군. 이때까지만 해도, 난 이 책에 큰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가왔다.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드디어 그 순간이.
두 달의 충분한 듯 하면서도 막상 아쉽기 짝이 없는 방학의 종지부를 찍을 때 즈음. 나는 의례 항상 계획했던 대로 근처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난 그 전까지만 해도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를 탐독하고 있었다. 아니, 탐독이란 말은 정정해야겠다. 그저 읽고 있었다. 말을 헤아리고, 읽는 재미를 찾는다기 보다는 과제하는 심정으로 글을 읽어나갔다. 마치 자격증을 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 듯 독서 리스트를 작성해 나갔다. 그러다 오래간만에 내 의지대로 '민음사'에서 벗어났다. (물론 그 전에도 반쯤은 내 의지대로 '민음사'를 읽어나갔지만.)
<책 도둑>을 찾는 건 쉬웠다. 아무도 이 책을 오랫동안 대여해 가지 않았으므로. 나처럼 책 표지와 책 제목에 현혹되어 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싶었다. 다시말하지 않아도 이해했으리라 본다. 처음에 밝힌 것과 같이 이 책은 그 겉모습만으로는 내게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
한 권도 아니고 1,2권으로 나뉘어 있다니.
끔찍했다. 앞으로도 읽어야 할 '민음사들'은 저렇게 쌓여 있는데, 여기서 잠시 주춤거려도 되는 걸까? 그래도 난 책을 빼들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미리 말했듯 '대화거리'를 위해서였다. 누구와? 바로 내게 책을 추천해준 그 어떤 사람과의. 난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겉으로는 친했지만, 좀 더 서로를 알고 싶었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통점이 있어야 했다. 즉, 꾸준히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필요했다. 관심분야. 우연히도 그는 독서를 좋아했다. 나 역시 독서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의무감에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서를 했다. 그것도 자주. 하지만 그저 독서라는 주제만으로는 너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책의 종류는 많았다. 하물며 장르도.
그가 반가운 기색으로 내게 "책 추천 좀 해줘."라고 말 했을 때,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읽는 건 민음사 시리즈인데요. 제목은? 그 중에 좋았던거? 글쎄요. 전 그냥 닥치는 대로 마음에 드는 데로 읽어서.
지우케를. 아, 지우멘슈.
난 이런 멍청이였다.
난 정말이지, 글을 읽고 있었다. 정말 단순히 글만 읽었다! 말만 헤집고 다녔다! 그 동안 뭘 한거지? 생각이란건? 말을 흔들 줄은 전혀 몰랐다. 말을 내 안에 담고, 말을 손에 쥐고,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말을 써내려가지 못했다. 난 아ㅡ
1권을 다 읽어갈 때 즈음, 나는 약간 흥미가 생겼지만 또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2권 역시 집어들었다. 그 이유는 위에서 밝힌 것 중 아직 언급되지 않은 다른 하나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난 저런 주제에 끌린다. 나는 절대 쓰지 못할, 심오하고도 철학적이고도 멋있는 주제기 때문일까? 사람들이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열광하는 이유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이런 주제를 좋아한다. 역사에 의해 희생된, 나라와 권력에 의해 죽어간 인간들의 이야기. 난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너무 좋아서) 조지 오웰의 <1984>을 좋아한다.
퓌러는 유태인도, 힘 없고 가난한 독일인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난 그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 상황을 이렇게 덜 무겁고 덜 힘들게 그려낸 작가의 화법에 새삼 놀랐다. 그것도 책을 다 읽고 책 표지를 덮으면서! 아니, 책 표지까지 덮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면서! 내 침대에는 아코디언을 연주해 줄 한스, 아빠는 없었다. 기침을 하다 눈을 뜬 채 쓰러진 남동생도, 지하실에서 조용히 올라와 친구가 되어 준 막스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책 도둑>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 모든 이들을 가슴에 품고 있는 리젤 메밍거, 그 작은 소녀, 책 도둑을 생각하면서.
죽음의 신이 이 책의 화자인데, 처음 시작은 별로 였다. 이렇게 성장 소설 티를 내듯,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는 서술이라니. 중간중간 이상한 메모들은 내 신경을 더 긁어놨다. 난 어느 새 글 쓰는 법을 기계적으로 공부하고 있었을 뿐, 진정 글 쓰는 것과는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랬다. 하지만 끝으로 갈 수록, 이 처참한 현실을 죽음의 신의 눈으로 묘사함으로써 난 조금 덜 힘들게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저 끝 부분, 결국 모두가 죽어버렸을 때. 그때서야 조금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책 속에 있는 말들은 정말 아름답다. 묘사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밧줄, 그 끝에 뚝뚝 떨어지는 해. 그 외 기타 등등 많은 아름다운 표현들이 있는데 내 머리 속에는 지우개가 있는지, 이런 멍청이. 여하튼 묘사들은 뒤로 갈 수록 아름다워지고 풍부해진다. 정말 말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자연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하나같이 태양 빛을 받고 있거나, 가끔은 먹구름에 그늘 져 있다. 또 때로는 지긋이 날 굽어보고 있기도 하다. 말들은 내 곁에 흩어져 있었다.
리젤과 루디는 금방이라도 살아 숨 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