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2011. 9. 1. 18:42마음에남아


창작극
연출, 극본 추민주
작곡 민찬홍, 윤지연

11/08/19  솔롱고 정문성 / 나영 이보라 / 주인할매 조민정 / 희정엄마 최가인 / 구씨 윤성원 / 마이클 최호중 / 여직원 김여진 / 빵 김지훈


   빨래하고 왔다! 역시 내 취향은 소극장. 무대전환이 많지 않고, 최소의 소품과 인원으로 가득, 알차게 꾸려낸 극이었다. <빨래>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큰 규모의 공연들을 연달아 보면서 재정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에 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홍롱고의 영상을 보다보니 이거 영상만 보며 앓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듯 싶어(웃음) 결국 예매. 결과는 대★만★족!
  솔롱고와 나영, 주인할매를 제외하고는 다들 1인 2역 정도를 소화하고 있었다. 주연을 제외하고는 다들 원 캐스트라 힘들 법도 한데, 지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찌나 끼가 넘치고 능청스럽게 웃기던지! 특히 마이클 덕분에 빵빵 터지고 왔다. 깨알같은 애드립(인지, 원래 대사인지) 폭ㅋ풍ㅋ! 대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맛을 아는 친구였다. 서점 직원일 때는 레알 능글능글@,@ 여직원이랑은 찰ㅋ떡ㅋ궁ㅋ합ㅋ. 자, 잘 됐으면 좋겠다! (여직원 김여진 배우 너무 귀여움*.*)
  보라 나영은 너무 예뻤다. 목소리도 맑고 발랄하고! 솔롱고가 왜 한 눈에 반했는지 이해가 됩니다요. 그렇게 밝고 귀여운데 '한 걸음 두 걸음'에서는 어찌나 절절하게 울면서 소리치던지! 내 가슴이 찢어지는 줄. 울지마요 나영... 솔롱고 빙ㅋ의ㅋ. <빨래>는 홍롱고의 영상으로만 접했는데, 이날 만난 정롱고는 홍롱고와는 조금 달랐다. 홍롱고만큼 깨알같이 재밌지는 않았지만, 아주 순수하고 쑥쓰러움이 많은. 그야말로 '쑥맥'이여서 더 눈길이 가는 그런 솔롱고였다. 어딘가 연기가 좀 어눌해서 아쉽기도 했지만, 노래할 때는 또 예쁜 미성! 그러나 몸이... 지, 짐슴남(*Q*)!! 2막 시작 후 팬싸인회에서 복근 노출했을 때 아니 저거슨 CG인가... 평소 다른 뮤배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그런 복근이야!!! 여성팬들이 어찌나 끝도 없이 줄을 서던지. 노래가 끝나도 싸인은 계속되었다능. (쩌리는 그저 앉아서 하염없이 바라만 볼 뿌니고...Hㅏ).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주인할매였다. 젊고 예쁜 조민정 배우가 연기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일부러 노인을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닌, 진짜 그냥 욕쟁이 할머니같았다. 굽은 허리를 펴는 사소한 동작, 호흡에서부터 말투까지. 오히려 OST로 들은 할머니보다 더 자연스러운, 억척스러운 할머니 그 자체였다. 거기다 할머니가 부르는 '내 딸 둘아'의 가사는, 가장 가슴을 치는 가사였다. 이런게 삶이구나, 이렇게 사는 거구나. 그 오랜 세월, 모진 세월에 문드러진 속 이렇게 달래셨나요 할머니. "그러나 어쩌것냐, 이것이 인생인 것을 … 요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잉게 암시랑토 안 허다." 그 눈빛, 말투, 손짓 하나 하나 한치도 어색하지 않게, 배우 본인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연기한 조민정 배우가 너무 멋졌다.
  "깨끗해지고 잘 말라 기분좋은 내일을 걸쳐요" 라는 말이 정말로 가슴에 와닿았다(아 우리 말의 아름다움...). 극은 한 순간도 허투루 흘러가지 않았다. 모든 인물들의 사연은 적당히 웃으면서 넘어가는 듯 싶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다뤄졌다. 희정엄마와 구씨도, 주인할매도, 나영과 솔롱고도. 짧은 씬 하나에도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뻔하지만 진정 가슴을 치는 이야기였다. 삶이 이렇게 퍽퍽하고 치사하고 구차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만약 극 중 인물들이 울면서 신세한탄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다면, 긴 러닝타임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빨래를 하듯이, 삶의 괴로움을 빨아내고 씻어내고 털어냈다. 그리고는 객석에 꼿꼿하게 앉아있는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 손을 내밀었다. 퍽퍽한 삶에 지친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듯, 즐겁게 노래하며 위로한다. 마치 어느 순정만화의 한 대사를 빌려온 것처럼, "난 슬플 땐 빨래를 해"라고. 어찌 이리도 사회적 약자들만 모아놓은 이야기가 있나, 싶다가도. 되려 그들의 긍정성에 힘을 얻고 온다. 저들의 처지보다는 지금의 내가 그나마 낫지, 하는 수준의 위로가 아니다(그리고 그건 오만일테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사 자체가 어딘가 지쳐 있던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웃음이 마치 나를 대신해주는 것 같은. 감정의 해소. 구깃해진 나의 감정들이 그들의 노래와 춤, 연기을 통해 빨래 되어 바람에 잘 마르고 반듯하게 다려진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 하루 이렇게 때가 졌지만, 그래도 내일은 깨끗하고 뽀송한 희망을 걸치고 살자.
  '빨래'라는 오브제(? 행위?)가 주제와 통일성있게 사용되어 좋았다. 배우들의 호흡도 무척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웃음을 놓치지 않는! '인천 사는 아들'의 등장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만큼 정직한 표현도 없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아주 훈훈한 작품이었다. 더불어 뮤지컬 넘버며 가사도 너무 좋았다. 창작극은 이런 점이 좋은 듯(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 바람은 홍롱고 한 번 더...!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