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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24. 20:46숨죽인마음


  뭔가 뒤숭숭한 요즘이다. 스마트폰을 산 이후로 점점 휴대폰 없이는 한시도 버티질 못하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안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책을 가지고 다녀도, 꺼낼 생각조차 않는다. '이것만 잠깐만 여기까지만.' 이러는 사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그냥 이리로 저리로 흘러가버린다. 사라져버린다. 쓸모없는 시간들. 하지만 알면서도 나는 그 잠깐의 틈도 가만히 버텨내질 못한다. 뭔가 터치하고, 끊임없이 로딩에 로딩. 게임을 다운받지 않은 것이 (취미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무튼, 스마트폰 때문에 짜증난다. 스스로의 무기력함에 짜증난다.
  나만 시간이 안 되어서 나 빼고 가족들끼리 주말 여행을 갔다.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으므로 (더불어 요즘 쇼핑을 너무 해야만 했기 때문에)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백화점에 들렀다. 오오 새삼 우리동네에 놀랐다. 서울이 아니라 예쁘고 괜찮은 보세옷을 싼 값에 건지려면 명동이나 홍대에 가야만하나... 싶었는데, 많이 생겼네. 뭐 그렇다고 얘네들 옷이 그닥 싸지만은 않고. 요즘 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날씨엔 뭘 입어야할지 모르겠다. 파는 옷들은 하나같이 멋이 없고 (패션은 쥐뿔 모르지만) 아니면 너무 괴상하거나. 너무 튀는 옷은 금방 질리니까 못 사고, 나이도 있고 아무튼. 옷은 그냥 저냥 훑어만 보고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신발을 예약했다(...). 전에 지나가다 신어보고 안 사고 말았는데, 대뜸 지금와서 사이즈가 다 빠져서 입고날을 기다려야 한다니까 사고 싶어지네? 이거 무슨 심리야. 아무튼 사고 말았다. 거기다 예전부터 살까 말까 고민하던 모란지도 대뜸 사버렸다. 평소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에 웬만해선 잘 안갔는데, 이런 추례한 꼴로 오늘은 잘도 돌아다녔다. 무슨 용기인지. 주말 밤의 용기인가. 주말 밤,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그런 풍경들을 끔찍이도 싫어하는데, 오늘은 좀 그게 편했다. 점원들도 사람이 많으니까 날 잘 신경 안 쓰고, 구경하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덜 외로웠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너무 들어가기 싫었다. 이런 날엔 꼭 약속도 안 잡히지! 아무튼 엄마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더불어 여자에겐 쇼핑이 꽤나 약이구나, 싶었다. 정작 필요한 옷은 하나도 못 샀지만. (뭘 사야할지도 마땅히 눈에 안 들어오고.) 집에 오는 길에는 밥해먹기 싫어서 분식을 포장해왔다. "포크 몇 개 필요하세요?"란 질문에 나도 모르게 "두 개요."라고 답했다. 나머지 하나는 지금 테이블 위에서 주인 없이 뒹굴고 있다.
  오늘 산 물건 중에 대단한 실패작이 있다. 오랜만의 실패. 난 엄청나게 충동구매를 자제하는 사람이기때문에 (반면에 엄청나게 오랜만에 갑자기 충동구매하는 경우도 있고.) 이러기 쉽지 않은데. 너무 만만하게 본거다. 이어폰 그 까짓거. 오늘 아침에 갑자기 한쪽이 이상하길래 매일 사던 곳에 가서 비슷한 걸로, (내가 쓰던게 없었다. 걍 나왔어야 했나.) 기왕이면 예쁜 걸로 샀다. 최대 출력 어쩌고 성능이 조금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는데 아뿔싸. 그건 너무 큰 차이였다. 가수의 감정이 다르게 느껴질 정도... 이 이어폰으로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를 듣다가 내가 울 뻔했다. 질 좋은 이어폰 다시 사서 들어야지. 으앙.
  집에 오는 길. 약간 루즈한 흰 면티에 검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은 남자가 자전거를 딸랑딸랑 타고 내 앞을 지나갔다. '아 좋네' (뭐가?)하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한 건널목에서 또 다시 마주쳤다. 건널목 도로 한 켠에 작은 트럭에서 생과자를 팔고 있었다. 남자는 생과자를 사고 있었다. 자전거를 옆에 잠시 세워두고. (자전거는 요즘 유행하는 브레이크 없앤 ㅍ자전거는 아니었다. 아주 무던한, 심지어 짐받침대(?)가 달린 옛날 표준 자전거. 그게 더 좋았다.) 난 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 젊은 친구가 집에 계신 아버지(혹은 할머니) 드리려고 생과자를 사가는구나. 효자다. 훈훈하다. 자칫하면 번호까지 물어볼 기세로 맹렬히 나홀로 훈훈해하고 있었는데. 자세히보니 고등학생이었다. 아마도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하느님 범죄를 저지를 뻔 했네요. 어휴. 위험해 가을.
  다시 질투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난 포기가 빠른 여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