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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7. 01:23숨죽인마음

0. 난 마음 속에 생각을 품고 있는 걸 잘 못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솔직한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입이 싼 편인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좋게 말해서) 하얀 거짓말이 늘어가고 있었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의 평화를 위해 엄마에게 계속 내 인생의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어서 그동안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었다. 하지만 점점 숨기기도 힘든 여러가지 사실들(을 비롯해 물건들도...)이 늘어나고 있어 어제 오늘, 계속 눈치만 보다 결국 날을 잡았다. 

1. 몇 주 전부터 세운 내 계획은 엄마와 영화도 보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카페가서 수다도 재밌게 떨며 데이트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짜잔!"하고 심경고백하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고 점심이고 계속 상황의 문제로 다 무산되고, 마트 한켠에서 파는 우동 한 그릇을 먹은 뒤 어색하게 엄마를 끌고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 하지만 카라멜마끼아또를 다 마실 때까지도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쓸데없는 신변잡기나 떠들다가, 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결국 털어놨다. 도저히 오늘이 아니면 얘기를 못할 것 같았다. 지금 마음 먹었을 때! 해치우고 싶었다. 난 마음의 부재든, 진짜 빚이든 뭐든 남겨놓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사실 엄마에게 오늘 할 말이 있었는데 도저히 하질 못했다, 고 밭은 숨을 내뱉듯 툭 뱉어버렸다. 매사에 큰 감정기복없이 무던하던 엄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털어놔, 라고 답했다. 그래서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고, 단박에 "진지한 관계는 아니지?"란 말을 들어야만 했다. 

2. 역시 우리 엄마는 항상 내 기대를 뛰어넘는 사람이다. 모든 일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우리 엄마 역시 엄마였나보다. 막상 본인 딸 이야기가 되니, 그래도 너는 안돼 라고 하는 엄마 말이다. 엄마의 호기심은 단숨에 불씨가 꺼졌고 더이상 묻질 않았다. 그래서 생각보다 싱겁게 내 고백은 끝이 났다. 

3. 아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