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9. 03:26ㆍ숨죽인마음
0. 블로그에 일기 쓰는 것을 그만뒀던 이유는, 아무리 써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확실히 하자면 나의 우울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아서 허탈했다. 지난 날의 징징거림을 여전히 하고 있는 나이 먹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 지겹기도 했다. 사실 그 우울이란 것도 나이를 먹으니 크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원래 가지고 태어난 나의 한 조각이구나. 떨치고 싶은 과거의 허물이라 생각하고 20대까지만 해도 계속 나름대로 물장구를 치며 앞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힘을 빼고 잠시 둥둥 떠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미처 진화하지 못한 내 아가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떼어 놓고선 난 존재할 수 없구나! 앞으로 도망치기는 커녕 항상 제자리걸음인 것이 인생이구나. 그나마 시간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는 물결에 저멀리 뒤로 안 밀려 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싶었다. 그렇게 받아들이니 조금 덜 우울해졌다.
1.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기대되는 것이 없다. 노쇠해지는 몸뚱이에 여전히 자라지 못한 정신상태가 갇혀있는 기분이다. 다들 그런 기분으로 사는거구나. 젊을 때 놀던 거 좋아하던 사람은 늙어서도 어딜 가서든 꼭 그 티를 낸다. 절대 고쳐지지 않는구나. 그게 인간이구나. 그렇다면 역시 나도 안 변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정말 재미가 없다.
2. 가족도 오래 보면 볼수록, 나도 나름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들의 비밀을 한커풀씩 알게 될 수록 실망스럽다. 결국 나란 인간은 이런 저런 피들의 한 조각 조각들을 가져다가 기워 만든 인간일 것일텐데. 알면 알수록 별로인 조각들이란 생각이 든다. 영 탐나는 것이 없는 조각들의 향연. 그리고 이 조각을 또 다음 세대에 랜덤게임으로 남겨야 하는 건, 그 조각을 받아 태어나고 만 애에게 너무 큰 짐 아닐까?
3.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래도 타고나게 우울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한다는 글을 보고 조금 위안이 되었다. 역시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남들 보기에 크게 문제 없는 삶을 살지만 여전히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그게 안 되는 건. 역시 다 타고나길 그런 것이구나.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인간은 결국 거의 99%는 타고나길 잘 타고나야 하는 것인가? 허망하다.
4. 그럼에도 엄마와 아빠의 극단적인 조각들만 괴상하게 뭉쳐져 있는 인간이 또 나라서, 우울의 호수에서 유유자적 헤엄치며 힘이 다할 때까진 살 예정이다. 당장 자살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냥 하루 하루 허망할 뿐이지. 사실상 그냥 마냥 누워서 하루 이상 자다가도 일어나서 달리기나 수영이나 요가를 하러 가는 인간이 나이기 때문에... 뭐.
5.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 BEEF> 보니까 아주 가슴이 답답하다. 재밌는데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