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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24. 03:50ㆍ숨죽인마음
진부한 멜로 드라마처럼,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다 지나간 일이고, 잊혀진 감정인줄 알았는데 막상 아니었다. 사실 겉으로 웃고 있을 때는, 예전만큼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다. 내 생각만큼 그는 멋있지 않았고, 훌륭하지 않았고, 날 좋아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고, 차차 마음을 접고 접어 서랍장 깊숙히 넣어둘 수 있었다. 꺼내보지 않으면 괜찮았다. 다 무뎌졌노라고, 스스로 깜짝 놀랄만큼. 그렇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날이 오고, 편지를 받고, 마지막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나니. 다시 접고 접었던 감정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예전만큼 깨끗하게 활짝 핀 감정은 아닐지라도, 피어오른다. 접힌 틈 사이로. 정말 예전에 러브레터를 쓸 때보다 더 많이 썼다. 아주 짧은 편지였지만, 종이는 대 여섯 장을 썼다. 하지만 결국 대충 접어 한 장을 건넬 참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당신을, 당신이 나를 생각한 만큼, 그 만큼만 생각한 걸로 보일까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정말이지.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다. 어찌해도 탄로 날 것만 같아 좀 씁쓸하다. 그냥 종이를 찢어버릴까. 아침이 되면 난 또 새 종이에 대충 휘갈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후회가 든다. 그 말은 그냥 지울껄. 하지만 또 형식적으로 쓴 편지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욕심을 부려 줄을 늘린다. 그러다 또 후회가 밀려든다. 구리다. 구려. 난 쪼다같아.
얇은 편지지 위로, 대충 휘갈겨진 글씨들 또 그 위로. 내 앞 장에 쓰여진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흔적.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의 흔적을 눈으로 훑는다. 스토커같아, 구질구질하게 나 왜 이래.
결국 새로 한 장을 뜯고 다시 썼다. 마치 처음 쓰는 것처럼, 틀린 흔적도 남겼다. 내용은 이미 몇번이나 반복해서 외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부담스럽지 않을만큼, 그러나 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만큼.
여기까지 8월 15일의 이야기. 광복절날 참 한심스럽기 그지 없었구만!
이젠 사실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조차. 그냥 그 사람과 나는 잘 안맞는구나, 대화가 참 재미가 없었지, 정도의 기억만 나는데도. 닮은 사람만 보면, 덜컹덜컹한다. 겁이 나는 건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냥, 아직 덜컹 거린다. 그리고 모두의 삶이 같지 않듯이, 내게도 남들과 같은 행복은 왠지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간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 사는 이야기에, 사람간의 관계에 언제나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고등학교에 가서는 좀 멀어졌, 다기보다 어쩌다보니 노는 무리가 달라져 연락이 뜸해졌었는데. 그 친구가 요즘 참 보고 싶다. 막상 만나면 서로 너무 달라져서, 얘깃거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 보고싶다. 난 요즘 왜이리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는 말에 또 덜컹덜컹했다. 그렇다면 나의 뜬금없는 연락도 그녀는 받아주지 않겠구나, 싶어서.
나는 요즘 보고 싶을 거예요, 라는 말을 참 자주 한다. 헌데 그건 거짓말이 아니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그 말을 한다. 보고 싶은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 그들도 나만큼 나를 가끔 생각해주고, 그리워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건 좀 무리일 것 같기도. 나에게 언제나 보고 싶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중에 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대부분 보고 싶은 사람들이긴 하지만, 걔중 하나 둘 정도는. 난 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은 굳이 만나고 싶지 않다. 졸업하고 뭐할꺼야? 라고 묻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