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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7. 12:00숨죽인마음


  오랜만에 탄 지하철 2호선은 정말 싫었다. 우리나라 지하철이 쾌적하고 크고 좋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도망치듯, 꿉꿉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래서 잠시 잊고 지냈었다. 기억은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 같다. 난 매사 부정적이라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제일 안 좋은 때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 잘, 제대로 생각해보자. 역시 유럽이 좋았다. 런던의 튜브가 작고 좁아도, 우리나라 1호선 만큼은 아니다. 바르셀로나와 로마의 메트로에 소매치기와 거지가 많아도, 나이든 노인내들이 풍기는 그 특유의 냄새와 불쾌한 신체접촉만큼 나쁘진 않다.
  2호선을 타고 오고가는 내내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아니, 앉지 못했다가 맞겠다. 어디선가 좀비들처럼 나타난 노인내들은 내 양 옆도 모자라 내 뒤를 감싸고 있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내릴 역'보다는 '앉을 자리'인 듯 싶었다. 검은 머리의 노인이 머리색이 희끗희끗한 노인에게 내키지 않는 자리양보를 하는 모습은, 훈훈하기 보다는 씁쓸한 광경이었다. 그들은 모두 잘 차려입고 있었다.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이 모두 비슷하듯, 할아버지들의 옷차림도 유행이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색감의 베레모같은 모자를 쓰고 마치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굴엔 수심이 깊었다. 세상 모든 짐을 다 짊어진 얼굴과 어깨였다. (사실 이는 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도. 지하철만 타면 바로 얼굴이 확 구겨진다.) 튀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무난한 모노톤의 머플러를 두르고, 자켓도 무난하다. 추위를 막기에도, 스타일을 살리기에도 나쁘지 않은 그런 코트나 점퍼를 입고 있었다. 모든 할아버지들이. 그들은 노약자석도 모자라 모두 중앙으로 모여든다. 그 특유의 냄새를 풍기면서. 
  전동차를 빠져나와 에스컬레이터를 오를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나이대에는 나는 과연 살아 있을까. 무엇을 하며, 그 무료한 세월들을 견뎌내야 할까. 마치 죄 지은 사람 처럼 고개를 푹 숙인채, 앉을 자리만 노려보면서, 아픈 시늉을 하며 지하철에 몸을 싣고 싶진 않다. 그게 그들의 유일한 시간을 죽이는 방법이고 하루 하루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다른 이들에겐 '살아 가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이고 행복이겠지만. 나에겐, 숨 쉬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슬픔이지 않을까? 적어도 시간을 죽이며 살고 싶진 않다.
 
  난 사람 많은 곳 자체를 안 좋아하는데, 코엑스에 갔다가 정말 정신을 놓아버리는 줄 알았다. 외국에서 길을 헤매는 것과 서울에서 길을 헤매는 것은 천지차이다. 서울에서 길을 헤매니까 (난 코엑스에서도 헤매는 사람임) 정말 내가 병신이구나...를 다시 한 번 뼈져리게 깨달았다. 아주 괴로운 경험이었다. 

  동네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다. 모래도 없다. 시소도 없다. 그네도 없다. 평소에 그네 타지도 않았으면서, 그네가 없어지니까 아주 슬프다. 그네타면서 노래 듣고 싶다. 어릴 적에 처음 그네타기를 배울때, 정말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줄 알았다. 너무 발을 굴러서. 단순히 발만 가만히 두면, 다시 모래를 밟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난 무엇이든 배울 때, 멈추는 법은 모른채 시작만 했다. 자전거도 발을 굴리기 시작하니 굴러갔다. 엄마에게 겁에 질려 소리칠 때까지도 바퀴는 잘도 굴렀다. 그대로 또 모래에 고꾸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시작에 두려움은 없는 편이었다. 수영을 배울때도, 발도 닿지 않는 깊은 수영장에서 갑자기 키판을 뺴앗긴채 또 발만 열심히 굴렀다. 물장구를 치니 앞으로 나아갔고, 나아가다 보면 벽이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멈추는 법을 먼저 알아야만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아니,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한 발짝 떼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