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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 18. 03:44숨죽인마음


  우리 동네에는 백화점과 할인마트가 꽤나 여러개 모여 있다. 무슨 구멍가게처럼 한 블럭 건너 하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그렇게 백화점과 할인마트 간의 거리가 멀지 않음에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물건과 사람들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난 모피를 입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날이 춥기도 추워서겠지만, 아주 부하지 않게 날씬하고 스타일리쉬하게 빼입은 여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이힐 아니면 부츠를 신고 있었다. 중년 여성이라고 해서 반짝이는 옷만 입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이 Chic했다. (물론 모피를 입고 있어도, 옷만 걸어다니고 있는 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반면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나오는 할인마트에는 패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백화점 내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듯 힐끔거리고, 위 아래로 훑는 것 같은 꺼림찍한 시선은 없었다. 그저 내 식구들 먹일 반찬거리 가격이 중요했다. 
  나는 백화점도, 할인마트도 다 불편하다. 백화점은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고,(그나마 서비스업을 좀 하면서 대하기가 나아졌지만) 할인마트는 너무 여유가 없어서 싫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1+1 행사는 좋은 것이다.

  오랜만에 오렌지 색 립스틱을 진하게 발랐다. 평소엔 틴트처럼 살짝 찍어 발라 혈색을 더하는 정도였다. 그 동안 집에만 쳐박혀 있으면서, 뷰티 블로그들만 보다보니 현실감각을 잊은게지. 갑자기 진하게 바르고 싶어졌다. 하지만 집 앞에 나갔다 오는거니까 화장 하는 수고는 들이고 싶지 않았다. 대충 다크서클을 가리고 (심각한 수준. 이젠 포기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가벼운 볼터치를 잊지 않고 (아직 죽지 않은, 살아 있는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한 혈색마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다니! 으아니!) 오렌지 색 립스틱을 쓱쓱. 오랜 칩거 생활로 시력이 떨어지고 판단력이 흐릿해지고 모든 것에 관대해졌는지 모르지만, 뭐 아주 파격적이진 않았다. 거기다 조금 기분이 좋아진 것 같기도. 누군가 대놓고 욕만 하지 않는다면, 우울한 날엔 진하게 바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