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128 : 아픔도 사치다

2015. 1. 29. 00:59숨죽인마음



요즘 병원을 댕기고 있다. 간단한 진료와 검사만 하는 데도 하루가 꼬박 다 가고, 진력이 난다. 그냥 병원을 가는 것 자체가 날 아프게 한다. 그나마 세브란스는 다른 곳보다 앓는 곡소리가 덜 들리는 크고 깔끔한 시설이라 견딜만 하다. 와이파이도 빵빵하다. 무료한 대기 시간을 견디기에 나쁘지 않다. 

암센터 중심부에 위치한 아주 커다란 굵은 기둥은 볼 때마다 위화감을 준다. 국내 탑급의 진료진들이 포진된 최상의 시설...을 보란듯이 자랑하는 마냥. 마치 그 기둥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아픈 이들의 기운을 빨아먹고 자라난 어떤 기괴한 생물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드 한 장을 기계에 띡 갖다대면 내 이름이 전광판을 통해 얄팍한 * 하나와 함께 등장한다.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최신의 시스템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내가 공장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간 부품 하나로 느껴지는 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뭐 할 때마다 원무과에 수납을 하면서 진료비니 검사비니 추가 어쩌고 뭐니 저쩌고니 하며 다양한 명목으로 돈을 공손하게 뜯어가는 그들을 보며 내가 맘껏 내뱉을 수 있는 건 약자의 한숨 뿐이다. 이 시대는 특히나 더욱 더. 돈과 시간이 없으면 아픈 것도 사치인 세상이 되어 버렸다. 헌데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그 누구 하나 성한 이가 어디 있겠는가. 몸의 병은 물론 마음의 병 하나쯤 없는 사람이 오히려 없지 않나. 

조직검사를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지혈을 위해 내 목을 힘껏 조르며 그나마 나는 좋은 부모를 만나 이런 사치를 마음껏 부릴 수 있다는 것에 몇 번이고 감사하다는 생각만 했다. 

다음 주도 신촌역 1번 출구에서부터 개찰구 근방까지 늘어진 셔틀버스 대기줄 끝에 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핑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