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맨오브라만차 2021

2021. 4. 20. 22:58마음에남아

 

21/04/15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류정한 / 알돈자 윤공주 / 산초 이훈진 / 도지사, 여관주인 서영주

 

인생 뮤지컬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20대에는 <빌리 엘리어트>를 꼽았다. 나를 처음 뮤지컬 '회전문'의 세계로 끌어들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사리 라이센스 공연이 다시 오른 그 사이 나는 나이를 먹었고 어린 소년이 꿈을 향해 춤추는 이야기는 옛날만큼 내 마음을 울리진 못했다.(영화는 여전히 감명 깊습니다만은...) 재연이 나쁘단 것이 아니고 초연을 너무 많이 봐서 그냥 초연 그 자체, 배우들, 호흡, 노래 가사, 그 시절의 나, 온도 습도 그 모든 것이 그저 그리울 뿐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첫사랑처럼.

아무튼 30대에 들어서면서 덕질을 비롯해 인간사 대부분의 것에 욕망이 사그러들었다. 그래도 <맨오브라만차>만은, 뮤지컬 배우 류정한의 무대만은 종종 그리웠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큰 고민 없이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 뮤지컬은 <맨오브라만차>라고.

 

코로나19로 올 초에 예매했던 티켓이 취소당하고 한동안 현생을 사느라 공연이 재개되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불현듯 티켓 사이트를 들어가 당장 며칠 뒤 공연을 예매했다. 시국 탓인지 아니면 내 깊진 않아도 변함없는 조용한 팬심을 알아주신 하늘의 뜻인지, 앞열 중앙 자리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이렇게 늦은 티켓팅에도 불구하고 충무에서 이렇게 좋은 자리를 얻을 줄이야...? 뮤덕 인생 처음있는 호재였다. 코시국에게 고마울 때가 다 있다니?! 거기다 한 자리씩 거리를 두고 앉아서 관람 환경은 역대 최고였다. 정말... 최고였다! 너무 쾌적! 앞 사람 머리에 가리지도 않고,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신경 쓰이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에겐 힘겨운 시간이겠지만, 관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참 인생 아이러니다.

 

 

인생 살면서 류님과 눈을 마주쳐본 적이 있던가? 언제나 티켓팅의 패배자였기 때문에 류님 공연은 앞자리라고 해봤자 사이드였고 중앙은 이렇게 앞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 용안을 이리 가까이서 뵐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인데(ㅋㅋㅋ) 비단 내 착각이라 할지라도, 공연 내내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대에 꽉 찰 만큼 언제나 더 좋은 연기를, 작품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님,,ㅠㅠ

 

류님 찬양은 항상 하도 많이 해서 간략하게 쓰려고 한다. 사실 2019년 뮤지컬 <시라노>를 봤었다. 극은 재밌고 나쁘지 않았지만 내겐 매력이 없었다. 데이트용 작품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류님이 제작하고 주연을 한다는 말에 약간 의무감에 봐서 그런지 후기 작성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무대에서 류님은 멋지고 재치발랄했지만... 그뿐이었달까. 작품 자체가 주는 감흥이 없어서 예매 경품으로 받은 OST는 지금 어디 굴러다니고 있는지 조차 모를... 아무튼 당시에 결혼도 하시고 모르는 새에 득녀도 하시고... 너무 놀라 팬심이 살짝 식을 뻔 했으나(ㅋㅋㅋㅋㅋㅋㅋ) 전 인간 류정한은 잘 모르고 무대 위의 배우 류정한을 좋아하는 거니까요. 무대에만 죽을 때까지 올라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그나저나 이런저런 넉두리로 벌써 몇 줄이나 낭비...🤦‍♀️)

벌써 50대에 접어드신 류르신답게 올해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류동키, 돈키호테 그 자체였다. 강렬한 태양에 맞서 부라리는 두 눈알과 어딘가 왜소해진 몸까지... 맨 처음 류님을 무대에서 뵀을 때는(그때가 아마 2010년도 <지킬앤하이드>) 약간 풍채가 성악가스러우시다,,,했으나 어느 순간 점점 (그 분과 연애할 때였나요...) 살도 더 빼고 완전 늘씬한 미남이 되시더니, 이젠 예전보다 더 마른느낌? 아니 그것보단 몸이 작아진 느낌? 원래 류님 자체의 아우라 때문에 풍채가 굉장히 좋다고 항상 느꼈는데, 가까이서 봐서 그런건지? 세월은 어쩔 수 없는건지? 마치 어느 날 본 아버지의 뒷모습이 작아졌다,,,란 느낌을 받아버렸다,,ㅠㅠㅠㅠㅠㅠㅠㅠ헝,,,, 그래도 여전히 체격 자체가 좋으시니 다리도 길고 어깨도 넓고 얼굴은 더 뾰족해지셨구,,, 세르반테스일 때도 여전히 멋진 청년이여요 류님❤ 가끔 헤롱대는 돈키호테일 때는 정말,,, 가끔 걱정도 되고? 특히 노새끌이들과 한판 벌이며 봉잡고 공중에서 버티실 때는, 와,,, 솔직히 조금 손에 땀을 쥐었읍니다,,, 체력은 국력이다,,! 아직 아가가 어려요 아부지ㅠㅠ,,, 나중에 애기가 왜 우리아빠는 할아버지야~~ 학교에 오지마~~ 이런 소리 안 듣도록 체력관리 잘하셔요ㅠㅠ 말 안해도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은~~ㅎ

 

공주돈자는 봤었던 것 같은 착각이 있었지만 역시 착각이었다!ㅎ 초면인 공주돈자라니,,,?! 스스로에게 놀랐다. 역시 난 뮤덕이라 하기엔 너무 라이트해. 무튼 공주돈자 계속 해줘서 너무 고마와요.(사실 정은돈자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건 그냥 선녀배우를 좋아하는 것ㅎ 그러나 왜때문인지 그녀는 <드라큘라>만 계속 할 뿐이고,,, <드라큘라>는 내 취향이 너무 아니고,,, 흑흑,,, 아무리 배우를 좋아해도 극이 제일 중요한 나란 사람)

역시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속일 수 없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공주돈자는 알돈자의 표준? 기본? 같은 느낌이었다. 태어나져서 사는 동안 의지와 상관 없이 닳고 닳게 되었지만, 그 현실에 마냥 매몰되지 않은, 고난에도 본인의 심지를 잃지 않는, 강하고 아름다운 레이디, 고귀한 둘시네아였다. 배우가 먼저 보이기 보다는 캐릭터 그 자체로 다가와서 어떤 다른 감상을 느낄 새도 없었다. 너무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이번 관극으로 또 한번 깨달았다. <맨오브라만차>의 미덕을. 알돈자의 시선에서!

 

 

이전까지는 '임파서블 드림'을 부르짖는, 죽기 직전까지 꿈을 잃지 않는 청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다. 노인 알론조 키하나는 죽었지만 돈키호테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고, 알돈자는 과거에 남고 둘시네아가 새로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꿈은 그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고 절망에 빠진 이들을 구한다는 것. 꿈을 간직하는 것, 그것이 인간다운 삶이란 것.

나름 이 작품의 내용과 주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또 새로울 수 있다니... 좋은 작품이란 이런 거겠지. 무대 막이 오르기 전 앙상블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오늘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어느덧 감정도 눈물도 바싹 메말라 버린 3n세의 나,,, 과연? 이 작품을 보는 동안만은 마음 편하게 솔직하게 감동받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역시 예감대로 마지막 알돈자, 아니 둘시네아의 외침에 눈물을 흘렸다. 

 

20대의 내 인생은 항상 혼란이었다. 20대 초반에 볼 때는 꿈을 쫓느라 숨이 턱까지 차서 괴로운 시절이었고, 20대 중후반에 볼 때는 꿈을 잃어 방황하느라 괴로웠다. 어느 새 30대가 되었고 요즘은 인생이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란 걸 받아들이는 중이다. 언제나 좌충우돌 사건사고 고난의 연속이고 그 자체이며 사실 별거 없는 하루하루의 조각모음이란 사실이 퍽 위로가 된다.

하지만 환상을 한꺼풀 벗겨낸 인간의 삶이란 게 이렇듯 초라할지라도, 꿈이 없는 인간이 얼마나 슬픈 존재인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세르반테스와 적막하던 내 마음의 빗장을 다시 한번 열어준 돈키호테가 고맙다. 알돈자의 대사 중에 "이 세상은 똥구덩이고 우린 거기서 뒹굴대는 구더기"란 자조적인 말에 공감하던 요즘이었다. 그래도 <맨오브라만차>를 보고 나니 다시 한번 미친 척 꿈을 꾸고 싶어졌다. 이 메마른 일상에도 언젠가 그들처럼 꿈을 찾아 두근거리는 날이 내게도 또 오겠지?

어쩜 극은 하난데 내 상황과 나이에 따라 느낌은 매번 달라지는지? 좋은 작품이란! 좋은 연기뿐만 아니라, 뮤지컬의 가장 큰 매력인 멋진 노래를 여전히 좋은 목소리와 실력으로 들려준 류님과 공주님(이름도 어쩜,,,) 두 분께 압도적 감사를 다시 한 번,,!🙌 

 

이번 캐스트는 특히나 만족스러웠는데, 구할이 훈진산초와 영주영주...님(류님 회심의 개그,,,ㅎ)이 함께한 덕분이었다. 배우들이 함께 한 시간만큼이나 무대 호흡이 거슬리는 부분 하나 없이 너무도 안정적이라 고향에 온 기분이었다.(ㅇ ㅔ?) 심지어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그 귀여움을 변함없이 발산한 훈진산초,,,ㅠㅠ 반전매력쩌는 영주영주까지ㅠㅠ 두 분이 저 캐릭터에 대한 내 안의 기준을 잡아 준 분들이라 다른 배우로 보면 재미가 확실히 반감되더이다. 이 4명은 죽을 때까지 <맨오브라만차> 무대에는 제발 꼭 서 주세오🙏 

 

 

비단 코로나19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시대 분위기의 변화도 연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알돈자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강간씬이 변경되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이전에도 보기 전부터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언제나 그 끔찍한 장면 묘사가 걱정되어 항상 이를 꽉 깨물고 봤었다. 왜 꼭 극적인 감동과 교훈을 위해 죄없는 사람이, 특히 약자 중의 약자인 그녀가 희생되어야 하는가 의문이 있었다. 옛날 작품이니 양보해서 그런 상황 설정까진 이해한다만은, 너무나 쓸데없이 자세하고 직접적인 몸 연기와 그 분위기 조성이 날 숨막히게 했다.

하지만 올해는 배우들 간에 직접적인 터치도 없어졌고 (심지어 노새끌이들이 초반에 등장해서 드럼처럼 세트를 치는 장면도 시늉으로 그쳤다. 그건 조금 아쉽,,,?) 내 기억에 온전히 의존하는 것이지만, 직접적인 표현이 줄어들고 알돈자의 겉치마를 벗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에 몸과 영혼이 파괴되어 절규하는 알돈자의 연기만으로도 그 중간과정에 대한 짐작과 그녀의 고통이 어떨지, 스토리 진행과 감정전달은 충분했다. 어느 영화평론가가 말했듯, 모든 창작물들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일 필요가 없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지가 중요하며, 그 방식은 언제나 철저히 고민되고 고민되어야 한다. 

 

 

정단영 안토니아는 살짝 어리숙하고 귀여운 면이 적고 가증스러운 면만 가득해서 조금 아쉬웠다. 성량도 조금 아쉽,,, 그 외 조연 및 앙상블 배우분들 모두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여전히 귀여운 김호 이발사! 예전 후기를 보다 알게 된 까라스코까지 예전과 같은 박인배 배우였다,,, 헐퀴? 모두 반가왔습니다. 이번 무대는 여러 역경을 딛고 개최된 동창회 같은 기분이었다. 

요즘 모두가 힘들지만, 주조연보다도 앙상블 배우분들이 특히 힘들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힘내서 좋은 작품을 보여주어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이고 고여버린 이 업계에 새로운 얼굴은 이제 없는가?란 불만 아닌 불만도 생겼다. 와중에 불현듯 슈퍼스타가 탄생할지 또 모를 일이지만. 벌써 내가 뮤지컬 본지도 10년이 되어가는데 대극장 주연배우들은 변함이 없고,,,ㅎ 농담처럼 류님 진짜 알론조 키하나의 나이가 될 때까지도 무대에 서실 체력만 된다면 충분히 서실 수 있으실듯,,, 팬에겐 너무 즐거운 일이지만,,, 흠냐~ 사실 젊은 배우들에게서 어떤 개성은 느낄 수 없었다. 스타 탄생이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니 지금 주름잡고 있는 스타들은 이미 젊을 때부터 다 주연배우하지 않았나...? 업계가 썩고 썩어서 어쩔 수 없나? 새로운 얼굴이 고픈 관객 입장에선 모르겠다... 

 

그나저나 공식 포토 누가 작업한겨,,,? 포토샵을 너무 들이부어서 진짜 보는 내가 다 민망쓰;;; 류님은 화보빨이 확실히 안 받는 체질임에 분명,,,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피부를 깔아뭉갤 일이었나,,,! 차라리 마지막 컨셉 사진만 풀지,,,ㅠ 암튼 류님 쓰러지실 때까지 무대에서 뵙고 싶은 것이 팬의 솔찍헌 마음입니다ㅎ(갑분팬심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