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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30. 04:02ㆍ숨죽인마음
2004년부터 둥지를 틀었던 네**블로그를 없앴다. 아니, 사실 중2병 돋는 깨알같은 뻘글들이 너무도 웃겨서 차마 다 지우진 못하고 비공개로 돌리고, 블로그는 표면적으로 닫았다. 나이 먹고 보니까 영 간지럽고 못 참겠어서, 없애버리고 싶었다. 근데 차마 다 지우기엔 좀 아쉽기도 해서. 나만 볼 수 있게 해뒀다.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로 아무도 모르게 다시 블로그를 시작할 지도 모르겠다. 티스토리엔 적지 못할 뻘글들을 (여기도 뻘글 천지지만) 더 자유분방하게 뱉어놓기 위해서. 근데 지금은 그마저도 귀찮다.
조금 슬펐던 것은, 내가 휴학하기 전, 휴학 초기 때에 적어놓은 글과 지금의 상태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뭐 이래 정말. 인생 꿀꿀하단 것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쩜 이리도 하나 나아진 것이 없나 싶어 좀 슬프다.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뭘 배운 것도 아니고. 진짜 허송세월 보냈다.
그러나 그게 나다. 나임을 너무 잘 안다. 난 평생 이렇게 살 것 같다.
밤마다 고민한다. 아 나는 왜 이모양으로 생겨먹었을까. 다시 되돌리기엔 내가 살아온 이십삼년의 시간이 짧지만은 않다.
쇼핑을 하고 싶다. 무언가 사고 싶다. 그러면 좀 내 안이 채워질 것도 같은데, 하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지. 내 지갑만 가벼워질 뿐이지. 그래도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옷 못 입는 편은 아닌데. 요즘은 영 뭐 사고 싶은 게 없다. 가끔 옷 사러 가도 정말 사고 싶은 게 없다. 예전엔 개성있던 옷들이 이젠 너도 나도 입으니까 전혀 개성이 없어졌다. 재미없어졌다. 입고 싶은 옷이 없다. 난 주로 작고 좀 흔하지 않은 프린트가 되어 있는 옷이나, 빛바랜 색의 티셔츠를 좋아하는데. 요즘엔 그것도 흔해빠졌고, 끌리는 프린트도 없다. 좋아하는 옷은 몇 년 전부터 계속 입어서 매년 여름마다 입기가 이젠 뭐하다. 쟨 옷이 저것밖에 없나 이런 인상을 줄까봐. 하지만 난 그 옷이 좋긴 한데. 이래서 옷장에 옷이 늘수록 입을 게 없나보다. 물론 요즘 유행하는 여러스타일의 옷을 나도 입어보고 싶다. 하지만 몸뚱이가 안 따라주니까. 늘 입던 스타일을 고집할 수밖에. 이래서 살 빼야 하는데. 맘처럼 안돼. 여튼, 요즘엔 영 뭘 사질 않았다. 매일 직장에 매여 사느라, 쇼핑할 시간조차 없다는 친구랑 옷 얘기하다가 싸울 뻔했다. 그래도 넌 쇼핑하기에 좋은 환경에서 일하잖아, 넌 옷가게로 출근하잖아, 신경써서 입잖아 매일! 이러는데 난 정말 일하면서 입는 옷은 '작업복'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 그리고 난 남의 시선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인간이기 때문에 출근할 때, 퇴근 후 약속이 없으면 전혀 신경써서 입고 나가질 않는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꼬라지로 나간단 말이다. 그게 거의 태반이고. 그리고 여기 옷은 나랑 전혀 안 맞아, 안 예뻐, 요즘 옷 생각도 안 난다! 이런 얘기 했다가 서로 싸울 뻔. 여자에게 쇼핑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문제임을 다시 느낌. 에이 신발, 가방이나 사야지.
요즘 유행하는 교차시켜서 끼는 고무 팔찌를 뭣도 모르고 사서 몇 주 차고 다녔다. 물론 난 그 팔찌의 정체도 몰랐고, 그냥 자주가는 가게에서 팔길래 색도 예쁘고 싸서 노란색을 샀다. 첨엔 두줄을 뭐 묶어놓지도 않고 딸랑 주길래 이걸 어찌 끼는거임? 잃어버림 어떡함? 이러고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언니가 알려줘서 알았다. 아! 교차시켜 끼는 거구나. 근데 아침에 엄마가 뉴스를 보더니 너 이거 끼지 말라고 그래서 왜? 했더니 그런 팔찌라네. 양놈들 문화가 그대로 들어와서 팔찌 하나 제대로 맘 놓고 못끼게 된 이 상황이 속쓰리다. 그들의 문화 속에서 그 팔찌는 그런 의미를 가졌겠지만, 우리나라엔 그냥 하나의 '패션'으로만 들어온 것 아닌가. 이래서 문화가 중요하다. 어쨌거나 의미를 알게 됐으니, 더이상 팔찌는 못 끼겠네. 이김에 묵주 팔찌나 하나 더 살까보다 에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