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 이석원
2010. 12. 31. 16:32ㆍ마음에남아
난 에세이는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이미 SNS니 뭐니로 모두 작가가 되어 자기 생각을 유감없이 늘어놓기에 바쁜 요즘이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어느 유명인의 생각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마당에, 온갖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발라 늘려놓은 문장의 모음을 뭐하러 굳이! 거기다 대부분 에세이들은 감상적이고 철학적이지 않은가? 난 아직도 남이 난체 하면서, 잘난 소리, 가르치는 소리 늘어놓는 건 참 못참겠더라. 그래서 서점에 가도 에세이 코너는 훑어도 안 봤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에 띄었다. 샛노란 표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 (난 요즘 나오는 소설책들의 표지가 정말 심히 마음에 안 든다. 그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처럼 정갈하게 디자인 하면 안되나? 왜 다들 그림에 해괴한 폰트를 덕지덕지. 거기다 책은 무지막지하게 크고 무겁다. 으) 특히나 표지 질감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 우툴두툴하면서도 보드라운. 검은색 명조체가 아주 철썩 들러붙은 것 같은, 정말 <보통의 존재>같은 책이었다. (허나 반대로 눈에 가장 띄는 책이기도 했다) 살까 말까 (난 책은 잘 안산다. 사면 오히려 안 읽게 되거든) 며칠을 고민하다 샀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나에겐 더 의미가 깊은 책. 그리고 더불어 언니네 이발관도 몹시 즐겨 듣던 때였다. 아, 즐겨 듣던 때라서 이 에세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건가? 하여튼간.
사실 밴드 음악만 들었지, 개인사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음악도 더 이해가 잘 되는 기분이고, 뭐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소위 '뮤지션'하면 어린 시절부터 뭔가 폭발하는 영감과 자아정체성으로 혼란을 겪고,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고, 기타등등. 이런 그럴싸하고 있어보이는 히스토리가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책을 읽어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고(그렇다고 안 파란만장하단 건 아니고) 그냥 '보통의 존재'였구나, 싶었다.
뭔가 나도 거창한 리뷰를 적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와 이토록 진부한 표현을!) 하지만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 나는,(다만 연말 시상식은 다 시ㅋ망ㅋ이라는 것 정도?) 열 사람이면 열 한사람 다 "어머 저건 잉여다!"라고 손가락질 할 내가 무슨 쓸 말이 있고, 무슨 기억이 나겠는가. 다만 이 책은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약간 울적해지는, 하지만 공감할 수 있어 즐거운 책이라 말 하고 싶다.
새벽 2시 정도에 할 일은 없고, 잠이 안와서 싸이에 접속하면 백이면 백 모두 우울증에 걸린다. (내 손목가지를 걸겠다) 파도타기 몇 명만 하다 보면 "슈방... 난 왜 이모양 이 꼴이지? 쟤네들은 하하호호 모두 저리도 즐겁게 사는데, 난 왜이리 잉여야... 지금 이 시간에 일촌도 아닌 쟤 싸이를 훔쳐보고 있는 지금 내 꼴 자체가 한심해 미쳐버릴 것 같다능ㅠㅠ!!" 이라고 울부짖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난 이미 저 단계를 넘어서서 모든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능..조, 조은 발전이다) 그런 사람에게 권한다. 저자는 "친구가 없니?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께"라고 말하는게 아닌, "친구가 없니? 없는 사람도 있는거야. 포기하면 편해"라고 말한다. 그래, 인정할 것은 빨리 인정하자. ASKY와 같은 진리. 진리가 어디 가겠나. (그러고보니, 희열옹과 뭔가 비슷한 과인듯. 초식돋네)
책을 읽고 나서야 인정하게 된 사실이 또 하나 있다. 가족 간에도 상극은 존재한다는 것. 그걸 모른 척 하고, 덮어두고, 화해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말고도. 그냥 우린 안 맞는다, 라는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한 것임을.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자꾸만 "왜?"라고 의문을 가지고,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자아탐구에 몰두하기도 하지만. 그래, 친구 중에도 안 맞는 사람이 있듯이. 그냥 타고나길 안 맞게 타고난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사실을 부모님들은 도통 인정하질 못한다. 아니 이런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지도. 옛날엔 부모님 말엔 절대 복종! 하는 시대였으니까. 어쨌든. (이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면 어쩌지? 싶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 따라 해석은 모두 다르겠지 뭐.)
세상 밖의 두 표류자
살며시 어깨에 기대더니 부탁이 있다고 했다. 아마 들어주지 않을 거라면서… 노래를 불러달란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가만히…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
가장 멋지게 불렀어야 할 순간에 실망스럽게 흘러나온 엉망진창의 노래가 끝나자 그 애는 고맙다고 했다.
며칠 전, 같이 저녁을 먹고 싶어서 저녁 먹었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방금 먹었다고 답장이 와 실망하고 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왜 부르지 않았냐며. 그래서 먹었다는데 뭘 부르냐고 하니까 먹었어도 네가 먹는 모습을 지켜봐주면 되지 않느냐는 거다.
"그런 거구나… 몰랐어… "
"그 나이 먹도록 어떻게 그런 것도 몰라요?"
"… "
아…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구나. 우리는 세상 밖의 두 표류자… 손을 꼭 잡고 함께 건널 무지개다리 앞에 서 있다.
살며시 어깨에 기대더니 부탁이 있다고 했다. 아마 들어주지 않을 거라면서… 노래를 불러달란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가만히…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Moon river… wider than a mile… "
가장 멋지게 불렀어야 할 순간에 실망스럽게 흘러나온 엉망진창의 노래가 끝나자 그 애는 고맙다고 했다.
며칠 전, 같이 저녁을 먹고 싶어서 저녁 먹었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방금 먹었다고 답장이 와 실망하고 있는데, 몇 시간이 지나서 다시 연락이 왔다. 왜 부르지 않았냐며. 그래서 먹었다는데 뭘 부르냐고 하니까 먹었어도 네가 먹는 모습을 지켜봐주면 되지 않느냐는 거다.
"그런 거구나… 몰랐어… "
"그 나이 먹도록 어떻게 그런 것도 몰라요?"
"… "
아…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구나. 우리는 세상 밖의 두 표류자… 손을 꼭 잡고 함께 건널 무지개다리 앞에 서 있다.
이 부분이 좋아서, 이걸 자랑하려고 (응?) 위에서 길고 앞뒤 없이 글을 썼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을 누군가 분명하게 말로 해주었을 때의 기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꼈다. 고로 나도 보통의 존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