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9. 01:36ㆍ숨죽인마음
아주 오랜만, 이라고 적으려다 바로 전 글을 보니 고작 보름 전이다. 보름 정도 밖에 못 들어온 블로그지만, 체감상으로는 한 일 년은 못 들어온 것 같다. 그런 생활이다.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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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마치 묶인 실에 의해 끌려가듯 정해진 열차칸에 타고 가장 신속한 걸음으로 2호선 환승을 한다. 역시나 정해진 열차칸에 타서 '오늘은 제발 좀 더 빨리 앉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운이 좋으면 거의 한 자리 차지하고 정신없이 잠에 취한다. 온몸으로 경멸했던, 나와는 먼 세상이었던 강남으로 매일 아침 그렇게 출근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오르며 생각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신속히! 정확하게! 성실하고 착한 직원따위 이 냉혹한 사회에서 아무짝에 쓸모 없다는 것을, 매일 매일 몸소 깨닫는 중이다.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잘' 해내기만 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결과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이 사회란 정글이다. 너무도 뻔한 말들이지만, 나 스스로 겪어보기 전까진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어느 조직에서건, 뛰어난 업무능력은 다른 그 어떤 조건들 보다도 최우선시 되는 것이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시스템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결국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사회생활에 대한 아무런 낭만도(낭만따위 없다고 생각했건만, 그것조차 낭만이었나보다. 나란 신입사원) 나아가야할 목표도 잡지 못한 채, 그저 부유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 업계에 발을 들이기 전, 분명히 각오했던 어려움들을 두 달 째 들어서면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법을 조금씩 체득하는 중이다. 하지만 버티고 견디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정말 무언가 이룰 수 있을까? 내 이름 석자를 남기고 말겠다는 야심은 이미 요 며칠 새 내린 초겨울 비에 씻겨 내려간 지 오래인 듯 싶다. 이토록 나약하고 허약해빠진 나란 인간인걸 잘 알고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이를 악 물고 달릴 각오로 뛰어든 사회이면서. 막상 하루 하루 현실이 지옥같이 느껴지다보니, 더 나은, 먼 미래를 도저히 꿈 꿀 수가 없다. 매일 아침 서른의 나를 상상해보려 하지만, 그 힘으로 하루를 버텨내보려 하지만. 이 곳에서 나의 서른은 그닥 아름다울 것 같지 않더라. 우스갯소리로 '얼른 돈 벌어서 이 바닥 뜨고 여유롭게 카페나 차리고 싶다'가 나의 최근 꿈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나약한 마음을 먹으면서도, 내심 한 편으로는 '그래도 버텨내 봐야지'란 생각이 든다. 여태껏 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왔다. 그것도 굉장히 순탄하게. 그러므로, 계속 말하다보면. 결국 서른의 나는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내가 이 바닥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조심스레 스스로를 또 한 번 다독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엔 그 어떤 응원가도 힘이 되질 않는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내 목소리 하나가 겨우 힘이 될 뿐이다. 아니, 그렇다고 믿으며 버텨내는 수밖에.
고생에 비해 그닥 공은 크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주저 앉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려면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야겠다고 오늘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너무 힘들어서 집에 오면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물론 앉아서도 밀린 업무 생각하느라 스트레스는 줄지 않았지만) 다시 힘내서 영화도 보러 다니고, 공연도 전시도 찾아 다녀야지. 내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서, 내 안을 채우자. 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행, 다시 한 번 떠나자. 어디가 되었든. 언제나 이렇게 코 끝이 시려오는 초겨울이 되면 유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매일 아침 유럽에서의 어느 날을 떠올린다. 유럽, 다시 갈 것이다. 그땐 좀 더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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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기한 일인게,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어버리면 다 이렇게 변하나 보다. 그 어릴 적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커서 꼭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과 일을 하고 말거야!' 라고 외쳤는데, 같이 일을 한 정도는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일의 일환으로 만나긴 했다. 물론 지금은 내가 그 아이돌을 전혀 좋아하지 않고, 그저 '뭘 하면 하는구나' 정도의 관심밖에 없어서 인지도 모르지만. 아주 가까이서, 심지어 내가 그 사람의 몸에 살짝 터치를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건만. 두근거림이나 설렘 따위가 전혀 없었다. 어서 이 순간 아무 실수 없이 일을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는 인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만반의 태세를 하던 차였기에. 나에겐 그 역시 '일'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세상에. 아주 가까이서 봤건만 아무런 감흥이 없다니. 스스로의 냉정함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뿐이었다. 고등학생때 선생님 몰래 야자를 빼고 친구와 추위에 덜덜 떨면서 공개방송에 갔을 때, 아주 가까이서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의 설렘과 흥분, 그 잔상은 아직도 또렷한데. 불과 며칠 전 실제로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본 그는 이토록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다니. 여러모로 아쉬웠다. 나도 결국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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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카톡을 정리하다 몇 개월 전 차단해버렸던 그 사람의 이름을 봤다. 프로필 사진은 꼭 쥔 두 손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손과는 다른, 무척 얇고 고운 예쁜 여자의 것이었다. "그래, 행복해져라!" 한 마디 외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토록 외로워하며 날 의심했던 너는, 지금은 그런 의심따위 없이 하루 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겠지. 보통의 여자를 만나 보통의 연애를 하며 행복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연애도 참 꾸준히 하는 사람이 하는 것 같다. 연애도 체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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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본적으로 선량한 사람인 척 연기를 잘 하는 편이다. 하지만 역시 뼛속까지 선량한 사람들과는 잘 안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