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4. 01:08ㆍ숨죽인마음
0. 결전의 날이 다가올 수록 흥분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기 보다는, 장이 아프다. 배알이 꼬이는 느낌이랄까. 이건 질투와 비슷한 감정이긴한데, 육체적으로 그 고통이 느껴져서 더욱 괴롭다.
1. 해리포터에 나오는 온갖 마법주문과 마법도구 중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덤블도어의 펜시브. 온갖 잡생각들을 끄집어내 담아놓고, 평소엔 텅 빈 머리로 살아가고 싶다. 필요할 때만, 추억팔이가 필요할 때만, 펜시브 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다.
2. 고등학교 2학년 영어회화 시간에 1:1로 선생님과 대화하는, 수행평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여러가지 질문 중 장래희망을 묻는 것이 있었다. 그당시엔 굉장히 스스로 잘난 맛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유는 그럴싸하게 꾸며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 감탄을 했다. 나참, 내 평생 쓸 자신감을 고등학교 시절에 다 써버린듯ㅋ. 이유인 즉슨, 나는 영화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나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멋진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영작을 하느라 애좀 먹었지만, 나름 괜찮은 반응을 얻었더랬다. (그외에도 영어회화 수업은 대체로 재밌는 기억이 많다. 병신 같은 분장을 하고 영어로 연극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B급 감성이 충만해 반 전체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었다. 모두가 예쁘고 정상적으로 연기하고 구성했는데... 결국 감출 수 없는 병신력이란^^!)
아무튼, 그런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대학에 갔건만. 대학 4~5년 동안 뭘 했는지 당췌 기억해 낼 수가 없다. 내가 그 시절 말했던 포부는 이미 사그라든지 오래고. 나는 병신이란 사실만 확실히 자각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진 지금. 그저 밥숟가락 하나 얻고 싶은 마음 반, 밥상을 차리고 싶은 마음 반이다.
하루에도 356번, 아니 그 이상을. 심지어는 잠 들어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자학하고 자위하고를 반복한다. 그래도 굉장히 부정적이었던 사상을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는데도, 기본 바탕은 어딜 가지 않는지. 태풍 세 개가 연속적으로 몰려온 이번 여름처럼,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한꺼번에 찾아와 너무 벅차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난 감당해낼 수 있다고. 내 의지를 가지고, 결국엔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내 스스로! 어느 조물주가 정해놓은 대로가 아닌, 내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을 수 있다고, 이상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제쯤이면 나도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고, 튼튼한 뿌리를 뻗고 설 때란 생각이 든다. 일단 나부터가 나를 믿어주자. 요근래 아무도 나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고 생각했다. 무척 친한 친구마저. 아무튼 그래서 너무 슬프고 괴로웠는데.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언제나 날 지지해주고 있었다. 내가 어떤 잉여질을 해대도, 절대 내게 직접적으로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고마움을 깨달으니, 힘이 조금 났다. 나를 위해 사는 게, 부모님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3. 올해는 용띠해고, 그러므로 난 잘 될 것이다. 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 힘으로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련다. 조금만 더 이기적으로 굴께.
4. 남한테는 힘든 내색 하기 싫고, 내 속의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게 너무 싫어서 더 딴 소리만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요근래 들어 정말 벅차서, 난 원래 내 얘기 하는 거 너무 힘들어 하는 애야. 그래서 너무 괴롭다. 란 말을 만나는 사람한테마다 다 한 거 같은 기분이다. 아 내 자신이 싫다.
5. 자기혐오와 자기긍정이 반복적으로 또 나타나고 있다. 한 생각을 하면, 또 반대편의 생각이 밀려온다. 아 진짜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서 괴롭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 덜 괴로울텐데. 최근들어 나로인해 부정적인 결과들이 도출되고 있는 것만 같아 더 괴롭다. 아아아아아아. 누가 내 머리 속 좀 on/off 해주었으면.